정책은 문서로 만들어지지만, 교육은 현장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정책 자료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현장의 현실이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기에 불안한 부모, 아이의 발달을 위해 애쓰지만 점점 소진되어 가는 교사, 생존을 걱정하는 기관,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의 신호를 보내는 정책이 매일 현장에서 교차합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국가책임교육은 과연 아이를 향하고 있는가. ■ 부모는 왜 특별활동을 먼저 묻는가 기관 선택을 위한 상담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특별활동으로 무엇을 하나요?”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교육철학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기에 더 좋은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의 선택은 기관의 교육철학보다 눈에 보이는 프로그램과 교육정보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과도한 교육경쟁은 이제 영유아기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열면 문해력, 영어, 수학, 코딩 등 수많은 교육정보가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추천됩니다. 교육정보는 부모의 선택을 돕기도 하지만, 때로는 눈에 보이는 프로그램이 좋은 교육의 기준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부모를 탓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정보의 양이 아닙니다. 어떤 정보가 부모의 교육관을 만들고, 결국 아이의 삶을 형성하는가 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현장 또한 외면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설득하는 데 머무를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의 발달과 교육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아가 우리 교육의 가치를 직접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 아이의 시간을 지키기 위한 교육의 재설계 아이의 시간을 지키고자 하는 기관일수록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특별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만으로는 우리 교육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습니다. 우리 교육을 충분히 이야기하기도 전에 상담이 끝나는 현실 앞에서, 특별활동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의 발달을 해치지 않으면서 부모와 우리 교육이 만날 수 있을지를 다시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 질문에서 교육의 재설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도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약 3개월 동안 흙 놀이를 시범 운영하며 교육과정을 다듬었습니다. 흙놀이가 끝나면 선생님과 함께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그 날의 놀이를 되짚으며 함께 읽어나갔습니다. 준비된 환경이 아이들의 자발적인 놀이를 충분히 열어주었는지, 어른의 개입은 놀이의 흐름을 존중했는지,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함께 성찰했습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보다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상한 흙 놀이'입니다. 이 이름에는 정해진 결과물을 만드는 일반적인 특별활동과는 다른 교육이라는 의미와 함께, 놀이 자체가 특별한 활동이 되어버린 오늘의 교육 현실에 대한 질문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다시 설계한 것은 특별활동이 아니라 아이의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의 경험이 오후의 놀이로 이어지고, 충분히 놀고 쉬며 탐색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속도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 현장은 정책 문서보다 정책 신호를 먼저 읽습니다. 국가는 2019 개정 누리과정을 통해 ‘유아 중심·놀이 중심’ 교육을 국가 교육과정의 원리로 제시했습니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 역시 영유아기의 핵심 역량은 조기 학습이 아니라 놀이와 탐색,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교육은 선언만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현장은 정책 문서보다 정책이 보내는 신호를 먼저 읽습니다. 무엇을 지원하는지, 무엇을 평가하는지, 무엇에 재정을 투입하는지를 통해 국가는 실제 어떤 교육을 장려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교육과정이 놀이 중심을 말하더라도 재정과 평가, 행정이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현장은 결국 그 신호를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5세 유아 무상교육비의 집행 방식입니다. 무상교육비는 교육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그러나 어린이집은 지원금이 기타필요경비 중심으로 지원되면서 특별활동과 외부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지원금 자체가 아닙니다. 좋은 정책도 집행 구조가 교육과정의 철학과 어긋나면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교육의 필요보다 집행의 편의가 앞서면 프로그램은 늘어나고, 아이들이 충분히 놀고 쉬며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시간은 줄어듭니다. 국가가 교육의 방향을 충분히 설명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지 못하면 부모의 불안을 이해하고 놀이의 가치를 설명하며 아이의 발달을 신뢰하도록 돕는 일까지 모두 현장의 몫이 됩니다. 많은 기관은 교육철학을 지키고 싶어도 생존을 함께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마주합니다. 아이의 시간을 지키는 일은 더 이상 개별 기관의 교육철학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닙니다. ■ 국가는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아이의 발달을 중심에 둔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기관일수록 더 많은 어려움을 마주합니다. 한 위탁심사 과정에서 정책심의위원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 지역에도 이런 기관 하나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격려라기보다 질문처럼 들렸습니다. 왜 아이의 발달과 놀이를 교육의 중심에 두려는 기관이 오히려 더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며 ‘특별한 기관’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국가책임교육은 프로그램을 늘리는 정책이 아닙니다. 아이의 발달을 기준으로 교육과정과 평가, 재정과 행정이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일관되고 섬세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아이의 시간을 지키는 교육이 특별한 기관의 철학이 아니라 모든 영유아교육기관의 기본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진정한 국가책임교육의 방향입니다. |
◼ 영유아 적기교육 보장 연속보도,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⑭ (2026.07.16.)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은 조기 사교육 광풍 속에 대한민국 아이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해 베이비뉴스에 26인의 릴레이 기고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를 시작하였고, 이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보도 형식으로 배포합니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만 5세가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실이 텅 비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영유아 교육의 현실입니다. 조기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발달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영유아 교육 현장의 교사, 연구자, 부모, 정책 전문가 26인은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교육 현실을 짚고, 국가와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조기가 아닌 ‘적기교육’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제안합니다.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때 자라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필자: 김오경(국공립 서초자연이랑어린이집 원장)
정책은 문서로 만들어지지만, 교육은 현장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정책 자료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현장의 현실이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기에 불안한 부모, 아이의 발달을 위해 애쓰지만 점점 소진되어 가는 교사, 생존을 걱정하는 기관,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의 신호를 보내는 정책이 매일 현장에서 교차합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국가책임교육은 과연 아이를 향하고 있는가.
■ 부모는 왜 특별활동을 먼저 묻는가
기관 선택을 위한 상담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특별활동으로 무엇을 하나요?”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교육철학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기에 더 좋은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의 선택은 기관의 교육철학보다 눈에 보이는 프로그램과 교육정보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과도한 교육경쟁은 이제 영유아기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열면 문해력, 영어, 수학, 코딩 등 수많은 교육정보가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추천됩니다. 교육정보는 부모의 선택을 돕기도 하지만, 때로는 눈에 보이는 프로그램이 좋은 교육의 기준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부모를 탓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정보의 양이 아닙니다. 어떤 정보가 부모의 교육관을 만들고, 결국 아이의 삶을 형성하는가 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현장 또한 외면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설득하는 데 머무를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의 발달과 교육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아가 우리 교육의 가치를 직접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 아이의 시간을 지키기 위한 교육의 재설계
아이의 시간을 지키고자 하는 기관일수록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특별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만으로는 우리 교육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습니다. 우리 교육을 충분히 이야기하기도 전에 상담이 끝나는 현실 앞에서, 특별활동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의 발달을 해치지 않으면서 부모와 우리 교육이 만날 수 있을지를 다시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 질문에서 교육의 재설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도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약 3개월 동안 흙 놀이를 시범 운영하며 교육과정을 다듬었습니다.
흙놀이가 끝나면 선생님과 함께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그 날의 놀이를 되짚으며 함께 읽어나갔습니다. 준비된 환경이 아이들의 자발적인 놀이를 충분히 열어주었는지, 어른의 개입은 놀이의 흐름을 존중했는지,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함께 성찰했습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보다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상한 흙 놀이'입니다. 이 이름에는 정해진 결과물을 만드는 일반적인 특별활동과는 다른 교육이라는 의미와 함께, 놀이 자체가 특별한 활동이 되어버린 오늘의 교육 현실에 대한 질문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다시 설계한 것은 특별활동이 아니라 아이의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의 경험이 오후의 놀이로 이어지고, 충분히 놀고 쉬며 탐색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속도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 현장은 정책 문서보다 정책 신호를 먼저 읽습니다.
국가는 2019 개정 누리과정을 통해 ‘유아 중심·놀이 중심’ 교육을 국가 교육과정의 원리로 제시했습니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 역시 영유아기의 핵심 역량은 조기 학습이 아니라 놀이와 탐색,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교육은 선언만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현장은 정책 문서보다 정책이 보내는 신호를 먼저 읽습니다. 무엇을 지원하는지, 무엇을 평가하는지, 무엇에 재정을 투입하는지를 통해 국가는 실제 어떤 교육을 장려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교육과정이 놀이 중심을 말하더라도 재정과 평가, 행정이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현장은 결국 그 신호를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5세 유아 무상교육비의 집행 방식입니다. 무상교육비는 교육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그러나 어린이집은 지원금이 기타필요경비 중심으로 지원되면서 특별활동과 외부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지원금 자체가 아닙니다. 좋은 정책도 집행 구조가 교육과정의 철학과 어긋나면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교육의 필요보다 집행의 편의가 앞서면 프로그램은 늘어나고, 아이들이 충분히 놀고 쉬며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시간은 줄어듭니다.
국가가 교육의 방향을 충분히 설명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지 못하면 부모의 불안을 이해하고 놀이의 가치를 설명하며 아이의 발달을 신뢰하도록 돕는 일까지 모두 현장의 몫이 됩니다. 많은 기관은 교육철학을 지키고 싶어도 생존을 함께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마주합니다. 아이의 시간을 지키는 일은 더 이상 개별 기관의 교육철학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닙니다.
■ 국가는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아이의 발달을 중심에 둔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기관일수록 더 많은 어려움을 마주합니다. 한 위탁심사 과정에서 정책심의위원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 지역에도 이런 기관 하나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격려라기보다 질문처럼 들렸습니다. 왜 아이의 발달과 놀이를 교육의 중심에 두려는 기관이 오히려 더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며 ‘특별한 기관’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국가책임교육은 프로그램을 늘리는 정책이 아닙니다. 아이의 발달을 기준으로 교육과정과 평가, 재정과 행정이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일관되고 섬세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아이의 시간을 지키는 교육이 특별한 기관의 철학이 아니라 모든 영유아교육기관의 기본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진정한 국가책임교육의 방향입니다.
※ 문의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천은아 책임연구원(02-797-4044/ 내선번호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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