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놀이하던 아이들이 작은 애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선생님, 여기 애벌레가 있어요.” “엄청 작다. 오늘 태어났나 봐.” “그럼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 아이들은 작은 애벌레를 둘러싸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어른의 눈에는 그저 아이들이 벌레 한 마리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이미 중요한 배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생명을 발견했고, 태어남을 상상했고,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애벌레 한 마리가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 감정과 언어를 깨운 것이다. ■ 아이들의 질문이 곧 배움이 되는 시간 교실에 돌아온 뒤에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이들은 애벌레에게도 엄마가 있을지 궁금해 했다. 작은 애벌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생명, 가족, 탄생, 기쁨과 감동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이 유아의 놀이다. 유아의 놀이는 정해진 교재의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길을 만들고, 아이들의 질문이 다음의 배움을 연다. 이 장면은 유아가 놀이를 통해 얼마나 깊고 넓게 배우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생명을 관찰하고,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다. 함께 노는 것을 통해 협력하며, 자신의 생각을 보여준다. 교육과정 속 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의 내용은 분리되지 않고, 놀이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이 유아중심·놀이중심을 핵심 방향으로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아교육은 더 많은 지식을 더 빨리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고, 관계 맺고,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전인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다.
유아에게 놀이는 쉬는 시간이 아닌 배움의 시간이다. 놀이의 학습의 반대말이 아니라 유아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강력한 학습방식인 것이다. ■ 눈에 보이는 ‘학습결과’에 밀려난 놀이, 조기 사교육에 갇힌 아이들 우리사회는 여전히 놀이보다 눈에 보이는 학습의 결과를 더욱 쉽게 믿는다. 아이가 한글을 읽는지, 영어단어를 몇 개 아는지, 숫자를 어디까지 셀 수 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놀이를 통해 길러지는 상상력, 자기조절력, 사회성, 협력, 문제해결력은 당장의 점수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놀이의 가치는 과소평가되고 조기학습의 성과는 과대평가된다. 부모들의 불안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놀기만 해도 괜찮을까?”, “다른 아이들은 벌써 영어학원에 다닌다는데 우리 아이만 늦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커진다. 불안 속에서 아이들의 시간은 학습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 선행학습으로 채워진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보고 만5세가 되면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실이 비어가는 현실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이 조기 사교육에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 '빨리'보다 중요한, ‘제 때’ 자랄 수 있는 아동의 권리 유아기의 배움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는 발달의 순서와 속도가 있다. 충분히 보고, 듣고, 만지고, 움직이고, 상상하고, 관계 맺어야 할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선행학습을 앞세우는 것은 아이의 성장을 앞당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경험을 빼앗는 일이 될 수 있다. 빨리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때 자라는 것이다. 놀이를 단지 교육적 방법으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놀이는 아이가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 31조는 모든 아동이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놀이와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놀이는 공부를 다 끝낸 뒤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행복을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기본 권리이다. ■ 얼마나 가르쳤는지가 아니라, '충분히 놀았는가'를 물어야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많이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아이가 충분히 놀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무엇을 빨리 배웠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 친구와 자연, 세상과 충분히 만났는가”를 살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유아에게 놀이가 배움의 방식이자 권리라면, 놀이를 개별 가정의 선택이나 기관의 교육철학에만 맡겨둘 수 없다. 모든 아이가 차별 없이 충분히 놀 수 있도록 시간, 공간, 환경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먼저, 부모가 놀이를 신뢰할 수 있도록 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 국가는 유아 발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놀이가 왜 중요한지 일관되게 알려야 한다. 부모가 불안 때문에 조기 사교육으로 밀려가지 않도록, 놀이중심 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사회 전체가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교사가 유아의 놀이를 깊이 관찰하고 적절히 지원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 놀이중심 교육은 아이들을 그냥 놀게 내버려 두는 교육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흥미와 질문을 읽고, 놀이가 더 깊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며, 필요한 순간에 언어와 자료와 관계를 지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는 연수와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는 충분한 실내외 놀이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며, 안전하면서도 다양한 탐색과 도전이 가능한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에 따라 놀이환경의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공원, 숲, 놀이터, 지역사회시설 등 생활권 안의 놀이공간도 확충해야 한다. 단순히 사고를 예방하는 수준을 넘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탐색하며 도전할 수 있는 공간 기준이 필요하다. 넷째, 유치원과 어린이집,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놀이를 지지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기관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집 앞 골목, 공원, 숲, 놀이터, 도서관, 마을 공간 전체가 아이들의 배움터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충분히 놀 수 있는 사회는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소중히 여기는 사회이다. 애벌레 한 마리를 위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생명을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고, 친구의 마음을 들으며,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배웠다. 이것이 유아기의 배움이다. 어른이 미리 정해 놓은 정답을 빨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안의 힘을 키워 가는 과정이다. 아이들의 시간은 어른들의 불안으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놀 시간, 마음껏 탐색할 공간, 자신의 속도로 자랄 권리가 있다. 조기 사교육의 속도 경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아이들의 현재이다. 아이들이 제때 자랄 수 있도록, 이제는 놀이의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
◼ 영유아 적기교육 보장 연속보도,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⑫ (2026.07.02.)
영유아의 놀이시간, 마땅히 누릴 '배움이자 권리'로 보장해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은 조기 사교육 광풍 속에 대한민국 아이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해 베이비뉴스에 26인의 릴레이 기고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를 시작하였고, 이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보도 형식으로 배포합니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만 5세가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실이 텅 비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영유아 교육의 현실입니다. 조기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발달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영유아 교육 현장의 교사, 연구자, 부모, 정책 전문가 26인은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교육 현실을 짚고, 국가와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조기가 아닌 ‘적기교육’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제안합니다.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때 자라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필자: 김영희(감일유치원 원감)
화창한 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놀이하던 아이들이 작은 애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선생님, 여기 애벌레가 있어요.”
“엄청 작다. 오늘 태어났나 봐.”
“그럼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
아이들은 작은 애벌레를 둘러싸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어른의 눈에는 그저 아이들이 벌레 한 마리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이미 중요한 배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생명을 발견했고, 태어남을 상상했고,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애벌레 한 마리가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 감정과 언어를 깨운 것이다.
■ 아이들의 질문이 곧 배움이 되는 시간
교실에 돌아온 뒤에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이들은 애벌레에게도 엄마가 있을지 궁금해 했다. 작은 애벌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생명, 가족, 탄생, 기쁨과 감동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이 유아의 놀이다. 유아의 놀이는 정해진 교재의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길을 만들고, 아이들의 질문이 다음의 배움을 연다.
이 장면은 유아가 놀이를 통해 얼마나 깊고 넓게 배우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생명을 관찰하고,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다. 함께 노는 것을 통해 협력하며, 자신의 생각을 보여준다. 교육과정 속 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의 내용은 분리되지 않고, 놀이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이 유아중심·놀이중심을 핵심 방향으로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아교육은 더 많은 지식을 더 빨리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고, 관계 맺고,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전인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다.
유아에게 놀이는 쉬는 시간이 아닌 배움의 시간이다. 놀이의 학습의 반대말이 아니라 유아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강력한 학습방식인 것이다.
■ 눈에 보이는 ‘학습결과’에 밀려난 놀이, 조기 사교육에 갇힌 아이들
우리사회는 여전히 놀이보다 눈에 보이는 학습의 결과를 더욱 쉽게 믿는다. 아이가 한글을 읽는지, 영어단어를 몇 개 아는지, 숫자를 어디까지 셀 수 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놀이를 통해 길러지는 상상력, 자기조절력, 사회성, 협력, 문제해결력은 당장의 점수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놀이의 가치는 과소평가되고 조기학습의 성과는 과대평가된다.
부모들의 불안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놀기만 해도 괜찮을까?”, “다른 아이들은 벌써 영어학원에 다닌다는데 우리 아이만 늦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커진다. 불안 속에서 아이들의 시간은 학습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 선행학습으로 채워진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보고 만5세가 되면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실이 비어가는 현실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이 조기 사교육에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 '빨리'보다 중요한, ‘제 때’ 자랄 수 있는 아동의 권리
유아기의 배움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는 발달의 순서와 속도가 있다. 충분히 보고, 듣고, 만지고, 움직이고, 상상하고, 관계 맺어야 할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선행학습을 앞세우는 것은 아이의 성장을 앞당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경험을 빼앗는 일이 될 수 있다. 빨리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때 자라는 것이다.
놀이를 단지 교육적 방법으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놀이는 아이가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 31조는 모든 아동이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놀이와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놀이는 공부를 다 끝낸 뒤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행복을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기본 권리이다.
■ 얼마나 가르쳤는지가 아니라, '충분히 놀았는가'를 물어야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많이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아이가 충분히 놀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무엇을 빨리 배웠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 친구와 자연, 세상과 충분히 만났는가”를 살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유아에게 놀이가 배움의 방식이자 권리라면, 놀이를 개별 가정의 선택이나 기관의 교육철학에만 맡겨둘 수 없다. 모든 아이가 차별 없이 충분히 놀 수 있도록 시간, 공간, 환경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먼저, 부모가 놀이를 신뢰할 수 있도록 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 국가는 유아 발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놀이가 왜 중요한지 일관되게 알려야 한다. 부모가 불안 때문에 조기 사교육으로 밀려가지 않도록, 놀이중심 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사회 전체가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교사가 유아의 놀이를 깊이 관찰하고 적절히 지원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 놀이중심 교육은 아이들을 그냥 놀게 내버려 두는 교육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흥미와 질문을 읽고, 놀이가 더 깊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며, 필요한 순간에 언어와 자료와 관계를 지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는 연수와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는 충분한 실내외 놀이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며, 안전하면서도 다양한 탐색과 도전이 가능한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에 따라 놀이환경의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공원, 숲, 놀이터, 지역사회시설 등 생활권 안의 놀이공간도 확충해야 한다. 단순히 사고를 예방하는 수준을 넘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탐색하며 도전할 수 있는 공간 기준이 필요하다.
넷째, 유치원과 어린이집,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놀이를 지지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기관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집 앞 골목, 공원, 숲, 놀이터, 도서관, 마을 공간 전체가 아이들의 배움터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충분히 놀 수 있는 사회는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소중히 여기는 사회이다.
애벌레 한 마리를 위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생명을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고, 친구의 마음을 들으며,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배웠다. 이것이 유아기의 배움이다. 어른이 미리 정해 놓은 정답을 빨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안의 힘을 키워 가는 과정이다.
아이들의 시간은 어른들의 불안으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놀 시간, 마음껏 탐색할 공간, 자신의 속도로 자랄 권리가 있다. 조기 사교육의 속도 경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아이들의 현재이다. 아이들이 제때 자랄 수 있도록, 이제는 놀이의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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