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늘도 새로운 일을 도모합니다, 같이 할래요? - 나유진 선생님

남들처럼 살아야 마음이 편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꼭 저렇게 살아야 할까? 다른 길은 없을까, 모두가 가는 이 길이 전부가 아니지 않을까’ 뒤돌아보기도 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종종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주말에도 학원 보충수업을 듣고 나오는 지친 아이들을 위로하려고 “얘들아,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쓴 현수막을 거는 학원 강사. 한글을 다 익히지 못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아이를 닦달하기보다, 작년과 비교하면 발전하고 있으니 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봐달라고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엄마가 있다.

 

나유진 선생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회원이 아니던 시절부터 ‘아깝다 학원비’ 소책자를 수 십 부씩 구입해 주변 사람들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목회자로서 교회를 세운다면 지역 공동체의 거점이 되는 곳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운영도 녹록치 않은 사립도서관을 만든 지 이제 9년 차.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일들이 꿈틀거리는 부천 역곡의 ‘뜰안에작은나무 도서관’ 관장, 사서, 활동가인 나유진 선생님을 줌으로 만나보았다.

 

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나 : 2012년엔가 우연히 좋은 대학 100플랜 출범 소식을 다음 뉴스에서 접했는데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열심히 검색해서 단체 사이트를 찾아보고 소책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기관에서 송인수 대표님 강의를 들었어요. 강의 2시간을 듣고 나니 그 자리에서 후원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그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 고등학생이 되는 2022년, 대한민국에서 입시 사교육은 사라집니다’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있었거든요. 제 큰 애가 마침 초1이었는데, 무조건 그렇게 돼야 한다기보다 그런 지향점을 가지고 변화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게 좋았죠.

 

채 : ‘아깝다 학원비’ 소책자의 어떤 점이 선생님 마음을 끌었던 걸까요?

나 : 우리 중고등학교 시절 생각하면 그때 했던 공부가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잖아요. 제 교육관이 정리돼 있진 않았지만, ‘바로 이거야! 나도 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싶어!’하는 생각이 동의를 얻은 거 같았어요. 읽는 순간 내가 꿈꾸고 바랐던 이야기에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채 : 역곡 지역모임은 언제부터 꾸려 오신 건가요?

나 : 제 관심 분야는 교육과 마을 공동체를 지향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뤄져 있었어요. 제가 교회에서 일하고 있는데, 교회가 지역에서 의미 없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거든요. 새로운 시작을 한다면 지역 속에서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로 하고 싶었어요. 마침 이 지역에 도서관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2013년 2월에 작게나마 도서관을 열게 된 거죠.

 

송인수 대표님 강의를 듣고 초창기에 열렬 팬이었으니까 도서관에서 여는 첫 번째 강좌는 송인수 선생님으로 섭외하고 싶었어요. 당시에 인천 지역모임을 하시던 이준영 선생님과 함께 지역 등대지기학교를 열었고요. 강의가 끝나고 저희 동네 분들 중심으로 역곡 지역모임을 시작했죠.

 

이분들과는 도서관에서 회복적 정의에 대한 강의를 듣고 교육을 받으면서 활동이 되게 커졌어요. 아예 ‘역곡마을평화센터’라는 단체를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대부분 사교육걱정 지역모임 구성원들이었어요. 회복적 정의를 배운 사교육걱정 회원들의 모임. 이 모임은 정말 별천지 같았죠. 본부에서는 교육운동과 정책제안을 펼치고, 지역에서는 저 같은 사람들이 주민들과 새로운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자라면서 찾아온 내적 검열

 

나 : 그렇게 시민운동을 동네 주민들과 연결하는 역할로 제 정체성을 잡게 됐어요. 정치하는 엄마들 부천모임의 첫 모임도 저희 도서관에서 시작됐거든요.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이 바로 사교육걱정 지역모임을 꾸린 경험이죠. 작년 초에 고정 멤버 4명과 도서관에서 지역모임 구성원을 모았는데 친해지기 전에 코로나가 오다보니 흐지부지됐어요. 도서관은 사람 모으고 강좌하기에 좋은 플랫폼인데 예전처럼 다시 할 수 있을까 요즘은 좀 방황하고 있어요.

 

채 : 방황이라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 : 이런 얘길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지금 사람들을 모은다면 초등 저학년 부모들이실 텐데, 내가 예전처럼 그분들께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자신이 없어요. 저희 첫째가 고1이 됐거든요. 아이 키우면서 공부 잘하기를 바랐던 것도 아니고 잘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닌데 성적표를 보면 저도 고민이 되는 거죠. 아이가 원하지 않은 학원을 보내지 않고 키운 시간을 돌아봤을 때 후회는 안 해요. 다시 돌아가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같이 커가는 시점이니까 사교육과 공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설득했었어요. 어느 누구도 나한테 ‘그 집 아이는 공부 잘해요?’ 이렇게 묻지 않지만 그들이 원하는 결과물에 공부가 포함돼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 부분은 부족한 채로 큰 거죠. 물론 저도 아이도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데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삶을 선택해야죠. 저는 지금도 사교육걱정의 회원이고 단체의 가치와 방향에 대해서 흔들림이 없어요. 저희 아이들은 자기 표현도 잘 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땐 나름대로 견뎌내면서 잘 자라고 있고요. 물론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서 내 생각을 물어보면 충분히 말할 수 있고, 때로는 상담도 해줘요. 다만, 예전처럼 내가 모임을 주도하는 건 조심스러워요. 그 분들이 아이가 공부를 안 해도 저처럼 후회하지 않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채 : 자녀들이 지금 몇 학년인가요?

나 : 지금 고1, 중1인데. 큰 애는 최근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생겨서 실용음악학원을 다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니는 학원이죠.

 

채 : 아이들이 예체능 사교육도 안 했나 봐요?

나 : 네, 제가 일부러 안 시킨 게 아니라 본인들이 안 하겠다니까 억지로 보낼 수가 없었어요. 둘째는 올해 중1인데, 대안학교에 들어갔어요. 작년에 학교 다니는 걸 힘들어 했거든요. 너무 힘들어해서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더라고요. 일주일에 1번만 참고 갔다 오라고 했는데, 교문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답답함이 몰려오고 눈물이 난다는 거예요. 모듬 수업도 없지, 체육도 안 하고 방과후 활동도 못하지, 우리 애들은 토론수업 같은 걸 좋아했는데 그런 게 다 사라지고 그냥 앉아만 있다 와야 하잖아요. 옆 자리도 못 돌아보게 하고 쉬는 시간마저 5분으로 줄였고요. 실은 많은 애들이 힘들어하는데 그냥 억지로 다녔던 걸 거예요. 결국 대면수업은 체험학습 신청서 내고 무사히 졸업은 했어요. 일반 중학교, 대안학교, 탈학교라는 선택지를 아이에게 주었더니 대안학교를 선택하더라고요.

 

채 : 어떤 학교인가요?

나 : ‘산학교’라고 20년 전에 대안학교 초등과정을 최초로 만든 학교예요. 버스 타고 20분 정도 가야 하는데, 다니겠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자유로운 학교생활이 가능하고, 엄마 아빠가 해결할 일이지만 학비가 많이 든다. 또 검정고시도 봐야 한다는 얘기도 해줬죠. 가자마자 한 달 만에 8박 9일 도보여행을 가더라고요. 재미있게 잘 다니고 있어요. 어제도 농구 동아리 모임 있다고 버스 타고 학교에서 놀고 같이 김밥 먹고 왔어요.

 

아이를 대안학교 보내고 나니 내가 꿈꿨던 교육이 대안학교에 있더라고요. 아이를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고 교사는 그 아이가 성장하는 걸 관찰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확장해 나갈까 고민하시고 그걸 끊임없이 부모와 토론하는 교육이오. 제가 학교 일을 하는 이유는 교육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거든요.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부모에게도 좋은 일이더라고요. 대안교육이 공교육에 건네는 제안을 모아서 포럼 같은 거 열어보면 어떨까 구상 중이에요.

 


교육을 바꾸기 위해 뛰어든 학부모 활동

 

채 : 아이가 학교 다니는 동안 계속 학부모 활동을 해 오셨던 거죠?

나 : 큰 아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2년 전까지 계속 했어요. 마지막에 학부모 운영위원장 할 때 교사들과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아서 정말 힘들었지만요. 예를 들어, 교복을 어떻게 바꾸려면 회의 과정과 절차가 있는데 그런 게 다 생략되고 최종안이 운영위로 올라오는 거예요. 그리고 무조건 결재만 해달라고 하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죠.

 

채 : 회의를 했는지 안 했는지 선생님이 어떻게 다 아셔요?

나 : 도서관이 이 동네에 있으니까요. 학교 활동하시는 분들이 도서관 이용자가 여럿 있거든요. 그분들을 통해 교복선정위원회가 선행되지 않은 걸 알았고요. 그래서 소위원회를 거쳐야 한다고 학부모 운영위원들이 이의를 제기하니까 교사위원들은 침묵하시더라고요. 결국 그 안건은 부결됐다가 제대로 절차를 다시 밟고 올라왔죠.

 

채 : 힘든 가운데 보람 있는 일도 있으셨나요?

나 :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역할 분담해서 크고 작은 일을 만들어 나갈 때는 좋죠. 첫 아이 초등학교 때 같은 부천 지역 회원이신 남태일 관장님은 운영위원회를 맡으셨고 저는 학부모회를 했어요. 학교 내 아빠 동아리를 만들고 캠프도 같이 하고요, 하지만 학부모 활동의 대부분은 회의인데, 회의를 통한 보람은 별로 없었어요. 마음 맞는 교사나, 소통할 수 있는 교사가 한 명도 없었거든요.

 

아이들과 눈 한 번 더 마주치면서 신뢰를 만들어 가고, 학부모를 민원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하고 교육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지로 여기는 선생님들이 있으면 뭔가라도 해 보겠는데 쉽지 않았어요. 학부모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정말 얼마 안 되거든요. 혁신학교를 신청이라도 해보려고 교육청 홈페이지 들어가서 자료를 전부 다운 받아 공부하고 회의에 가서 선생님들 설득해 봤는데 그 역시도 잘 안됐죠.

 

그나마 매년 학부모 연수에서 좋은 강사를 초청하는 일은 성사시켰어요. 송인수 대표님, 고병헌 교수님, 박재원 소장님 같은 분들이 여러 번씩 오셨으니까요. 좋은 강의는 확실히 영향력이 있어요. 아이를 열심히 공부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자는 얘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우리의 태도를 먼저 성찰해보자고 제안하는 강사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은 분들과 제가 지금도 계속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활동 하면서 제가 제일 혜택을 본 것 같아요. 학교 활동, 도서관 활동, 지역 활동하면서 저희 아이들이 좋은 이웃들과 함께 잘 클 수 있고요.

또 하나 주력했던 건 도서관에서 회복적 정의 교육을 받고 활동을 꾸준히 해왔으니까 학교에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면 무조건 들어갔어요. 학교에서는 요즘 교권보호위원회 비중이 점점 커졌는데 거기에서도 징계를 내릴 수 있어요. 이슈가 커져서 누군가는 학폭위에 신고를 하고 선생님들은 교권보호위원회에 신청을 해요. 그런 일이 동시에 막 벌어지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거죠. 거기서 중심을 잡아야 해요.

 

회복적 정의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채 : 학폭위에 들어가서 기존 방식과 다르게 변화시킨 사례도 있나요?

나 : 학폭위는 매뉴얼이 있어서 다른 방식을 적용하기는 힘들어요. 2년 전부턴 학폭위가 교육지원청으로 들어가서 개별학교에서 학교폭력을 다루진 않고요. 교육지원청 내 학부모 위원이 들어가죠. 기존과 다르게 하기 힘든 구조긴 해도 매뉴얼의 틈새를 찾을 수는 있었어요. 예를 들어 갈등조정단이라는 게 생겨서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대화로 해라. 필요하면 전문가를 보내주겠다는 시스템이 생겼어요. 그게 없을 때도 우리가 자발적으로 틈새를 만들었어요. 학폭위 중간에 회의를 중지하자고 정회를 선언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회의를 하기로 해요. 그 사이에 양 당사자를 설득해서 대화 모임을 하는 거죠. 가해자라고 여겨지는 사람과 피해자라고 여기는 사람이 대화를 먼저 해보는 거예요. 한 번은 조정 모임이 7시간까지 이어져서 새벽 3시에 학교를 나온 적도 있어요.

 

채 : 조정 모임 한 번에 7시간을 하셨다고요?

나 : 중간에 쉬는 시간이야 물론 있었죠. 갈등이라는 게 아이들의 갈등인 건데 부모끼리의 갈등이나 부모와 학교와의 갈등으로 번지니까요. 조정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조정 전문가가 따로 있어요. 때로는 학폭위에서 징계받은 애들이 위탁 프로그램을 통해 저희 같은 회복적 정의 활동가를 만나요. 1주일에 15-20시간 정도 우리가 구성한 회복적 생활 교육에 참여해서 활동하는 거죠. 아이가 자신을 찾아가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줘요.

 

채 : 아이들이 거기에 호응을 해요?

나 : 보통 아이들은 크게 처벌받을 줄 알고 벌벌 떨면서 왔는데 지지와 격려를 받으니까 호응이 좋아요. 자기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게끔 하니까요.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아픔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런 부분을 살펴보면서 대화도 나누고요. 마지막 날 우리에게 쿠키를 직접 구워 오는 아이도 있고, 선물을 주고 가기도 해요. 그런 마음들이 기억에 남죠.

 

채 : 지금도 그 위탁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고 있나요?

나 : 경기도 교육청 갈등조정단에는 저희가 들어가 있고, 역곡마을평화센터 중심으로 마을에서도 계속 활동하죠.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가 가해자를 응보적으로 처벌하려는 심리가 되게 커요. 전들 안 그러겠어요. 하지만, 가해자를 때려죽인들 피해자가 회복되진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회복적 정의라고 하면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걸로 착각하세요. 핵심은 피해자 회복이 이뤄져야 하는 거예요. 가해자를 처벌할 때도 어떻게 하면 피해자의 고통을 알게 할까에 포커스가 맞춰져야죠. 우리 사회에 회복적 정의가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선생님의 삶에 가장 중요하게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나 : 최근에 저도 참여하는 인권모임 하나가 만들어졌어요. 숲 모니터링 하는 시민모임도 생겼고요. 제로웨이스트 샵도 협동조합 형태로 준비 중이에요. 이 활동들은 도서관이 플랫폼이 되어 네트워킹을 이루는 거죠. 이렇게 저희 안에서 조금씩 연결돼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 뭔가 기획하고 응원하기가 수월해졌어요. 이게 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하면서 배운 것 같아요.

 

최근 10년 가까이 제 삶의 상당 부분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했어요. 본부 활동에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도서관에서 책을 선정할 때도 작용하니까요. 사교육걱정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은 상상이 잘 안 돼요. 무엇보다 아이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해 준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사실 애가 뭘 해야 행복할지 나도 잘 모르죠. 보통의 논리는 공부 열심히 해서 안정된 직장 얻어야 한다가 전부잖아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 거죠. 소책자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 이론적 배경이 있는 데이터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구체적인 데이터를 갖고 얘기하니까 제 삶의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 줬죠.


나유진 선생님은 2시간의 인터뷰 동안 사소한 정보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기억을 되짚고 또 되짚었다. 엄격한 자기검열 때문에 역곡 지역모임은 한동안 다시 꾸리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지역과 학교에서 시도한 노력들은 오늘 당장의 열매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n가지 길로 이어질 것이다. 오늘도 마을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을 것만 같은 나유진 선생님의 행보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 운동을 한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어떤 변화도 만들어 내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운동은 또 다른 운동을 낳고 사회는 그렇게 조금씩 변해 간다.” 마이클 왈저의 <운동은 이렇게> 중에서


사단법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ㅣ사업자번호 356-82-00194ㅣ공동대표 신소영 나성훈

ㅣ이사장 송인수 ㅣ (04382)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62길 23 유진빌딩 4층

ㅣ문의 02-797-4044 noworry@noworry.kr개인정보처리방침

호스팅제공자 : (주)누구나데이터 | 개인정보보호 관리 책임자 : 김용명 | 팩스 : 02-797-4484

Copyright 사단법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All Right Reserved.


사단법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업자번호 356-82-00194 ㅣ 대표 정지현, 홍민정

호스팅제공자 : (주)누구나데이터 | 

개인정보보호 관리 책임자 : 김용명 

| 팩스 : 027974484

|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