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학부모의 공부불안을 헤아려주는 집단상담 프로그램 ‘학부모맑음워크숍’에서 김진원 선생님을 만났다. 차분하고 따스하게 워크숍을 진행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온몸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계신 게 느껴졌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꾸준히 상담 활동을 하고 계신 선생님의 스토리가 궁금했던 터에 인터뷰를 청했다.
김혜화 (이하 혜)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김진원 (이하 진) : 2013년쯤 등대지기학교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예요. 제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기였어요. 대한민국 엄마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저도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인성적으로 잘 키우고 싶은 열의를 갖고 살았는데 저에게는 그때가 실패의 시기였어요. 큰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학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작은 아이는 학업은 고사하고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어요. 저는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 찾기에 바빴죠. 그때 우연히 등대지기학교를 알게 되었는데, 강의가 정말 좋았어요. 그런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게 제 인생 통틀어 처음이었어요. 너무 반가웠죠.
혜 : 등대지기 학교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힘이 된 걸까요?
진 : 강의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제가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된 거 같았어요. 제가 살고 있는 세계가 사실은 무척 좁았던 거죠.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하고 눈이 뜨이는 느낌. 충격이었어요.(당시 강사진이 최재천, 윤구병, 김찬호, 최혁진 등이었다.)
혜 : 저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그런 반가운 충격을 경험하는 때가 있어요. 이후에 노워리상담넷에서 상담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진 : 제가 대전에 살아서 다른 활동은 엄두를 내지 못했죠. 그러다 2016년에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노워리상담넷에서 상담위원을 모집했어요. 사실은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좀 이기적이었죠. ‘나에게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다른 분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요. 심리학을 전공하기는 했는데 그때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심리상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 자신이 없어졌어요. ‘전공했다고 뭘 할 수 있겠어.’하며 지내다가, 서울 온 뒤로는 아이들도 많이 컸고.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상담위원 활동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혜 : 선생님이 오랫동안 가지고 계셨던 꿈이 꿈틀했던 거네요. 상담위원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상담 공부도 다시 시작하신 건가요?
진 : 공부를 시작하고, 수련 과정을 받았죠. 그 과정에서 저 자신을 많이 알게 되었고 지금은 심리상담가로 일하고 있어요. 학부모맑음워크숍 리더로 활동하는 것도 제가 하는 일에 많은 도움이 돼요.
강의와 비교할 수 없는 집단 상담 워크숍
혜 : 학부모맑음워크숍도 심리상담과 관련이 있나요?
진 : 학부모맑음워크숍은 집단 상담의 형식이에요. 상담을 실제로 하면서 집단 상담의 효과가 얼마나 강력한지 계속 체험하고 있어요. 학부모맑음워크숍이 집단 상담으로 설계된 걸 알고 굉장히 기뻤어요. 학부모맑음워크숍은 1회기에 2시간으로 진행되고, 총 5회기 10시간을 함께해요. 요즘 시대에 학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겪는 걱정과 불안이 점점 더해지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이 이런저런 강의를 찾아 듣고 공부하시죠.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 쉽고 좋은 강의를 들을 수도 있지만, 그런 강의는 나를 훑고 스쳐 지나가기 쉬워요.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내가 뭔가 도움을 받았다고 착각하기도 하죠. 저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제가 생각할 때 학부모맑음워크숍은 하나의 대안활동으로 가치가 있어요.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거든요. 좋은 내용을 듣고 만족하는 데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해보는 거예요. 내가 실천해 볼 수 있는 것 하나를 딱 잡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내 것이 되죠.
혜 : 집단 상담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이라는 게 뭘까요?
진 : 집단 상담은 여러 가지 효과가 있는데, 가장 중요하고 좋은 효과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를 경험하는 거예요. 다 아는 내용이지만, 직접 내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와 안도감을 경험하죠. 크고 무겁게 느껴졌던 내 문제가 가벼워지는 경험. 이게 정말 중요해요. 집단 상담은 배움의 장(場)이 되기도 해요. 만약 10명이라면 10명의 교사가 있는 거예요. 집단 구성원의 태도나 생각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게 정말 많죠. 집단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내가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볼 수 있는 연습의 기회가 주어지고요. 물론 전제가 있기는 하지요. 열린 마음. 집단원으로 참여할 때 마음을 닫고 있으면 어느 것도 배우지 못해요. 그건 사실 어느 교육이나 마찬가지죠.
열린 마음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효과
혜 : 집단 상담 효과가 강력한 만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 마음을 연다는 게 쉽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요. 저는 1년 정도 함께한 등대원들과 참여해서 그 효과를 많이 본 것 같아요.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고요. 그런데 학부모맑음워크숍 참여자들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 그룹을 형성하잖아요. 금세 관계가 친밀해지기도 어렵고요.
진 :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지금까지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은 대부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오셔요. 물론 집단 상담 자체를 낯설어하는 분도 계시죠. 모르는 사람과 얼마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5회기만에 어떤 효과가 있을까. 주저하며 신청하는 분도 계세요. 또 강의 같은 방식을 기대하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첫 모임을 굉장히 공 들여 준비해요. 집단 상담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알려드리고,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도 말씀드리죠. 하지만 “열린 마음이 제일 중요해요.” 아무리 말한다 한들 갑자기 마음이 확 열리는 건 아니죠. 근데 신기하게도 회기를 거듭할수록 마음이 열리는 게 보여요. 1회기만에 확 오픈되는 분도 있고요. 일주일을 지내고 다시 만나면 그 시간 동안 변화가 있기도 해요. 제가 만났던 분들은 대부분 초반에 마음이 열리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만큼 얻어가세요.
혜 : 학부모맑음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진 : 기억에 남는 분은 너무 많죠. 5회기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직접 해보거든요. 예를 들면 ‘열린 대화, 닫힌 대화’를 직접 연습해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어요. 대화 내용은 똑같은데 열린 대화는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거예요. 듣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들은 내용을 기억해서 이야기한 사람에게 다시 얘기해 주는 거죠. 반면 닫힌 대화는 듣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지 않아요. 딴짓을 하죠.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이야기하는 사람은 계속 대화를 해보려고 하지만 듣는 사람의 태도 때문에 쉽지 않아요. 두 가지 상황을 실제 연습해 보고 느낀점을 나누는 시간을 갖거든요. 그런데 다음 시간에 “저 딸이랑 이렇게 대화해 봤어요.”, “연습한 대로 남편이랑 이야기해 봤어요.” 하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상에서 해보는 거예요. 직접 하면서 알게 된 변화를 나눠 주는 거죠. 그런 분들은 워크숍에서 했던 체험이 그냥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으로 가져간 거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그런 분들이 꽤 많았요.
혜 : 저도 워크숍 하면서 배웠던 대화법이 기억에 남아요. 당연히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연습해 보니까 더 크게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랑 이야기할 때 꼭 아이의 눈을 봐야겠다. 집중해야겠다.’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워크숍에서 연습한 것을 일상으로 가져가서 꾸준히 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서로를 점검해 줄 수 있는 관계가 이어지면 좋겠다는 싶어요. 워크숍은 5회기로 끝나지만, 삶은 계속되니까요. 배운 것을 잊지 않고 하면 참 좋겠는데, 혼자서는 잘 안 되잖아요.
진 : 맞아요. 제가 워크숍에서 만났던 분 중에도 그런 의견을 주신 분이 계셨어요. 워크숍이 지속되면 좋겠다는 이야기 들으면서 지역 등대모임을 말씀드렸어요. 개인차는 있을 수 있지만 등대 모임과 함께하면서 분명히 힘을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워크숍 이후 등대모임에 참석한다고 연락 주신 분들도 계세요.
온라인 등대 모임도 생겨서 내가 사는 지역에 모임이 없어도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간절함이 있으면 기회를 만나게 되죠. 저도 간절함으로 찾다가 등대지기학교를 만났고,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니까요.
내 불안을 마주하다
혜 :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슷한 부분이 많다 싶어 신기해요. 저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기회가 있었거든요. 선생님이 학부모로서 지낸 시간도 궁금해요. 저는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느끼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모를 때가 많고,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불안할 때도 많거든요.
진 : 제 아이들은 다 성인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힘들어했던 시기에 저도 잘 지내지 못했어요. 일단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닌데 아침 일찍 일어나 밥 챙겨주는 것부터 어려웠어요. 아이 일과에 맞춰 움직이려면 체력이 좋아야 하더라고요. 아이가 공부를 잘해도 불안하고 못해도 불안하고. 불안하다고 피할 수는 없으니 겨우겨우 했죠.
저는 제 불안을 인지하면서 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힘들었던 게 아이를 못 믿어서 그런 거더라고요. 저의 불안을 마주하면서 아주 조금씩 마음의 중심을 잡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어떤 삶을 살든 그건 아이 인생이니까 나는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죠.
혜 : 선생님 안에 있는 불안을 인식하면서 편해졌다는 건가요? 조금 아리송해요. 불안을 대하는 관점이 바뀐 건가요?
진 : 상담이나 교육을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내가 겪고 있는 불안이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내 불안에 내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지요. 보통 불안하면 불안함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바쁘잖아요. 불안을 없애버리기 위해 방법을 찾죠. 저도 그랬어요. 근데 그렇게 해서는 해결되는 게 없더라고요.
저도 요즘은 이 방법을 쓰고 있는데요. 불안할 때, 이 불안은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걸까 생각하는 거예요. 불안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불안은 일종의 싸인이죠.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싸인. 불안하면 일단은 잠깐 멈춰야 해요. 가만히. 그리고 불안이 나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돼요.
처음에는 잘 안 들려요. 왜냐면 우리는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잘 안 되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시간이 걸려요. 잠깐 멈춰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분명히 들려요. 알게 되죠. 선생님도 학부모가 되고 나서 불안함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불안일까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느껴지는 선생님의 불안은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요?
혜 : 음... (잠시 생각) 문제가 많은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 두려움... 같아요.
진 : 그럴 수 있죠. 불안을 느끼는 건 같지만 불안이 알려주는 것은 저마다 다를 수 있어요.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선생님이 느끼는 불안은 ‘내 아이가 문제가 많을까 봐 두려워’라는 선생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죠. 내 안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가 있는 거죠. 그럼 그런 나를 괜찮다고 보듬어 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진원아, 네 아이가 문제 많은 애로 자랄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거지.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이렇게요. 이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근데 저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우리는 불안하면 불안한 자기 자신을 외면해 버리려고 해요. ‘불안에 떨고 있는 너, 필요 없어. 도움이 안 돼’하면서 자기를 버려두죠. 그건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에요. 집단 상담의 효과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하잖아요. 그러고나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힘을 얻기도 하고요. 바로 그거예요. 그걸 자신에게 해주는 거예요.
혜 : 불안한 마음을 빨리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감정을 인정하라는 거네요. 그리고 멈춰서 불안이 하는 말을 듣고 내 안에 나를 토닥토닥해 주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거죠?
진 : 맞아요. 그게 핵심이에요! 자기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이에게도, 타인에게도 할 수 있어요. 나에게 안 되면 아이에게도 안 돼요. 나에게 되는 만큼만 아이에게 돼요. 이건 100%예요. 그래서 나에게 하라는 거예요.
혜 : 오늘 또 하나 배우고 가네요. 삶으로 가져가야 할 중요한 것 하나를 얻게 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꾸준히 함께하는 이유에 대해 듣고 싶어요.
진 : 저는 건강한 시민, 건강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면서 제 눈이 뜨였다고 했잖아요. 사실 저는 정치나 사회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고,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제가 저희 집에서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바깥을 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내가 사는 세상,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그래도 뭔가 합리적이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주 작은 점 하나라도 찍어 보려고 해요. 그런 마음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하고 있어요. 학부모맑음워크숍 활동을 하면서 저는 즐거워요. 즐겁다는 건 저에게도 뭔가 얻는 게 있다는 거죠. 힘들기만 하면 안 하죠!
작아 보여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나의 삶에서 살아내는 게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그 삶을 살아가는 김진원 선생님의 이야기는 따뜻한 힘이 있다.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된다. 선생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많은 이들이 이런 기회를 만나고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4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이전보다 훨씬 ‘맑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글_노워리기자단 김혜화
작년 여름, 학부모의 공부불안을 헤아려주는 집단상담 프로그램 ‘학부모맑음워크숍’에서 김진원 선생님을 만났다. 차분하고 따스하게 워크숍을 진행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온몸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계신 게 느껴졌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꾸준히 상담 활동을 하고 계신 선생님의 스토리가 궁금했던 터에 인터뷰를 청했다.
김혜화 (이하 혜)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김진원 (이하 진) : 2013년쯤 등대지기학교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예요. 제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기였어요. 대한민국 엄마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저도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인성적으로 잘 키우고 싶은 열의를 갖고 살았는데 저에게는 그때가 실패의 시기였어요. 큰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학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작은 아이는 학업은 고사하고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어요. 저는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 찾기에 바빴죠. 그때 우연히 등대지기학교를 알게 되었는데, 강의가 정말 좋았어요. 그런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게 제 인생 통틀어 처음이었어요. 너무 반가웠죠.
혜 : 등대지기 학교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힘이 된 걸까요?
진 : 강의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제가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된 거 같았어요. 제가 살고 있는 세계가 사실은 무척 좁았던 거죠.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하고 눈이 뜨이는 느낌. 충격이었어요.(당시 강사진이 최재천, 윤구병, 김찬호, 최혁진 등이었다.)
혜 : 저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그런 반가운 충격을 경험하는 때가 있어요. 이후에 노워리상담넷에서 상담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진 : 제가 대전에 살아서 다른 활동은 엄두를 내지 못했죠. 그러다 2016년에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노워리상담넷에서 상담위원을 모집했어요. 사실은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좀 이기적이었죠. ‘나에게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다른 분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요. 심리학을 전공하기는 했는데 그때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심리상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 자신이 없어졌어요. ‘전공했다고 뭘 할 수 있겠어.’하며 지내다가, 서울 온 뒤로는 아이들도 많이 컸고.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상담위원 활동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혜 : 선생님이 오랫동안 가지고 계셨던 꿈이 꿈틀했던 거네요. 상담위원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상담 공부도 다시 시작하신 건가요?
진 : 공부를 시작하고, 수련 과정을 받았죠. 그 과정에서 저 자신을 많이 알게 되었고 지금은 심리상담가로 일하고 있어요. 학부모맑음워크숍 리더로 활동하는 것도 제가 하는 일에 많은 도움이 돼요.
강의와 비교할 수 없는 집단 상담 워크숍
혜 : 학부모맑음워크숍도 심리상담과 관련이 있나요?
진 : 학부모맑음워크숍은 집단 상담의 형식이에요. 상담을 실제로 하면서 집단 상담의 효과가 얼마나 강력한지 계속 체험하고 있어요. 학부모맑음워크숍이 집단 상담으로 설계된 걸 알고 굉장히 기뻤어요. 학부모맑음워크숍은 1회기에 2시간으로 진행되고, 총 5회기 10시간을 함께해요. 요즘 시대에 학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겪는 걱정과 불안이 점점 더해지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이 이런저런 강의를 찾아 듣고 공부하시죠.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 쉽고 좋은 강의를 들을 수도 있지만, 그런 강의는 나를 훑고 스쳐 지나가기 쉬워요.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내가 뭔가 도움을 받았다고 착각하기도 하죠. 저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제가 생각할 때 학부모맑음워크숍은 하나의 대안활동으로 가치가 있어요.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거든요. 좋은 내용을 듣고 만족하는 데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해보는 거예요. 내가 실천해 볼 수 있는 것 하나를 딱 잡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내 것이 되죠.
혜 : 집단 상담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이라는 게 뭘까요?
진 : 집단 상담은 여러 가지 효과가 있는데, 가장 중요하고 좋은 효과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를 경험하는 거예요. 다 아는 내용이지만, 직접 내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와 안도감을 경험하죠. 크고 무겁게 느껴졌던 내 문제가 가벼워지는 경험. 이게 정말 중요해요. 집단 상담은 배움의 장(場)이 되기도 해요. 만약 10명이라면 10명의 교사가 있는 거예요. 집단 구성원의 태도나 생각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게 정말 많죠. 집단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내가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볼 수 있는 연습의 기회가 주어지고요. 물론 전제가 있기는 하지요. 열린 마음. 집단원으로 참여할 때 마음을 닫고 있으면 어느 것도 배우지 못해요. 그건 사실 어느 교육이나 마찬가지죠.
열린 마음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효과
혜 : 집단 상담 효과가 강력한 만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 마음을 연다는 게 쉽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요. 저는 1년 정도 함께한 등대원들과 참여해서 그 효과를 많이 본 것 같아요.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고요. 그런데 학부모맑음워크숍 참여자들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 그룹을 형성하잖아요. 금세 관계가 친밀해지기도 어렵고요.
진 :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지금까지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은 대부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오셔요. 물론 집단 상담 자체를 낯설어하는 분도 계시죠. 모르는 사람과 얼마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5회기만에 어떤 효과가 있을까. 주저하며 신청하는 분도 계세요. 또 강의 같은 방식을 기대하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첫 모임을 굉장히 공 들여 준비해요. 집단 상담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알려드리고,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도 말씀드리죠. 하지만 “열린 마음이 제일 중요해요.” 아무리 말한다 한들 갑자기 마음이 확 열리는 건 아니죠. 근데 신기하게도 회기를 거듭할수록 마음이 열리는 게 보여요. 1회기만에 확 오픈되는 분도 있고요. 일주일을 지내고 다시 만나면 그 시간 동안 변화가 있기도 해요. 제가 만났던 분들은 대부분 초반에 마음이 열리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만큼 얻어가세요.
혜 : 학부모맑음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진 : 기억에 남는 분은 너무 많죠. 5회기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직접 해보거든요. 예를 들면 ‘열린 대화, 닫힌 대화’를 직접 연습해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어요. 대화 내용은 똑같은데 열린 대화는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거예요. 듣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들은 내용을 기억해서 이야기한 사람에게 다시 얘기해 주는 거죠. 반면 닫힌 대화는 듣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지 않아요. 딴짓을 하죠.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이야기하는 사람은 계속 대화를 해보려고 하지만 듣는 사람의 태도 때문에 쉽지 않아요. 두 가지 상황을 실제 연습해 보고 느낀점을 나누는 시간을 갖거든요. 그런데 다음 시간에 “저 딸이랑 이렇게 대화해 봤어요.”, “연습한 대로 남편이랑 이야기해 봤어요.” 하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상에서 해보는 거예요. 직접 하면서 알게 된 변화를 나눠 주는 거죠. 그런 분들은 워크숍에서 했던 체험이 그냥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으로 가져간 거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그런 분들이 꽤 많았요.
혜 : 저도 워크숍 하면서 배웠던 대화법이 기억에 남아요. 당연히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연습해 보니까 더 크게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랑 이야기할 때 꼭 아이의 눈을 봐야겠다. 집중해야겠다.’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워크숍에서 연습한 것을 일상으로 가져가서 꾸준히 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서로를 점검해 줄 수 있는 관계가 이어지면 좋겠다는 싶어요. 워크숍은 5회기로 끝나지만, 삶은 계속되니까요. 배운 것을 잊지 않고 하면 참 좋겠는데, 혼자서는 잘 안 되잖아요.
진 : 맞아요. 제가 워크숍에서 만났던 분 중에도 그런 의견을 주신 분이 계셨어요. 워크숍이 지속되면 좋겠다는 이야기 들으면서 지역 등대모임을 말씀드렸어요. 개인차는 있을 수 있지만 등대 모임과 함께하면서 분명히 힘을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워크숍 이후 등대모임에 참석한다고 연락 주신 분들도 계세요.
온라인 등대 모임도 생겨서 내가 사는 지역에 모임이 없어도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간절함이 있으면 기회를 만나게 되죠. 저도 간절함으로 찾다가 등대지기학교를 만났고,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니까요.
내 불안을 마주하다
혜 :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슷한 부분이 많다 싶어 신기해요. 저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기회가 있었거든요. 선생님이 학부모로서 지낸 시간도 궁금해요. 저는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느끼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모를 때가 많고,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불안할 때도 많거든요.
진 : 제 아이들은 다 성인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힘들어했던 시기에 저도 잘 지내지 못했어요. 일단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닌데 아침 일찍 일어나 밥 챙겨주는 것부터 어려웠어요. 아이 일과에 맞춰 움직이려면 체력이 좋아야 하더라고요. 아이가 공부를 잘해도 불안하고 못해도 불안하고. 불안하다고 피할 수는 없으니 겨우겨우 했죠.
저는 제 불안을 인지하면서 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힘들었던 게 아이를 못 믿어서 그런 거더라고요. 저의 불안을 마주하면서 아주 조금씩 마음의 중심을 잡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어떤 삶을 살든 그건 아이 인생이니까 나는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죠.
혜 : 선생님 안에 있는 불안을 인식하면서 편해졌다는 건가요? 조금 아리송해요. 불안을 대하는 관점이 바뀐 건가요?
진 : 상담이나 교육을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내가 겪고 있는 불안이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내 불안에 내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지요. 보통 불안하면 불안함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바쁘잖아요. 불안을 없애버리기 위해 방법을 찾죠. 저도 그랬어요. 근데 그렇게 해서는 해결되는 게 없더라고요.
저도 요즘은 이 방법을 쓰고 있는데요. 불안할 때, 이 불안은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걸까 생각하는 거예요. 불안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불안은 일종의 싸인이죠.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싸인. 불안하면 일단은 잠깐 멈춰야 해요. 가만히. 그리고 불안이 나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돼요.
처음에는 잘 안 들려요. 왜냐면 우리는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잘 안 되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시간이 걸려요. 잠깐 멈춰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분명히 들려요. 알게 되죠. 선생님도 학부모가 되고 나서 불안함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불안일까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느껴지는 선생님의 불안은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요?
혜 : 음... (잠시 생각) 문제가 많은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 두려움... 같아요.
진 : 그럴 수 있죠. 불안을 느끼는 건 같지만 불안이 알려주는 것은 저마다 다를 수 있어요.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선생님이 느끼는 불안은 ‘내 아이가 문제가 많을까 봐 두려워’라는 선생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죠. 내 안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가 있는 거죠. 그럼 그런 나를 괜찮다고 보듬어 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진원아, 네 아이가 문제 많은 애로 자랄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거지.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이렇게요. 이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근데 저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우리는 불안하면 불안한 자기 자신을 외면해 버리려고 해요. ‘불안에 떨고 있는 너, 필요 없어. 도움이 안 돼’하면서 자기를 버려두죠. 그건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에요. 집단 상담의 효과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하잖아요. 그러고나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힘을 얻기도 하고요. 바로 그거예요. 그걸 자신에게 해주는 거예요.
혜 : 불안한 마음을 빨리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감정을 인정하라는 거네요. 그리고 멈춰서 불안이 하는 말을 듣고 내 안에 나를 토닥토닥해 주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거죠?
진 : 맞아요. 그게 핵심이에요! 자기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이에게도, 타인에게도 할 수 있어요. 나에게 안 되면 아이에게도 안 돼요. 나에게 되는 만큼만 아이에게 돼요. 이건 100%예요. 그래서 나에게 하라는 거예요.
혜 : 오늘 또 하나 배우고 가네요. 삶으로 가져가야 할 중요한 것 하나를 얻게 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꾸준히 함께하는 이유에 대해 듣고 싶어요.
진 : 저는 건강한 시민, 건강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면서 제 눈이 뜨였다고 했잖아요. 사실 저는 정치나 사회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고,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제가 저희 집에서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바깥을 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내가 사는 세상,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그래도 뭔가 합리적이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주 작은 점 하나라도 찍어 보려고 해요. 그런 마음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하고 있어요. 학부모맑음워크숍 활동을 하면서 저는 즐거워요. 즐겁다는 건 저에게도 뭔가 얻는 게 있다는 거죠. 힘들기만 하면 안 하죠!
작아 보여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나의 삶에서 살아내는 게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그 삶을 살아가는 김진원 선생님의 이야기는 따뜻한 힘이 있다.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된다. 선생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많은 이들이 이런 기회를 만나고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4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이전보다 훨씬 ‘맑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글_노워리기자단 김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