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아들이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허리는 물론이고 손목까지 아파 정형외과에 다닌다는 얘길 들었다.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그는 아들이 이미 중독인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얼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20대 상근자 용용이(닉네임)를 찾아갔다. 그가 사는 건물 지하상가에 PC방이 들어올 때 개업일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게임 매니아라는 걸 알고 있던 터였다.
게임중독 아들을 둔 친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물었더니, 그는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튿날 사내 메신저로 심리상담 결과지에서나 볼 법한 긴 답변을 보내왔다. 그 답변의 내용과 깊이에 놀라, 바로 정리해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식 카페에 업로드했다. 이는 노워리상담넷 영상 콘텐츠로 발전하더니, 현재 노워리 스쿨 온라인 강의 ‘게임중독 출신의 미디어 과몰입 사용설명서’로 탄생했다. 이 강의는 작년에 339명이 수강했는데, 80%가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게임중독을 호되게 통과하면서 성찰한 용용이의 ‘살아있는 조언’이기 때문이리라.
게임뿐 아니라, 아이의 스마트폰 과사용이 고민이라면 용용이의 온라인 강의부터 듣고 이 인터뷰를 읽길 권한다. 자녀의 문화를 이해하기 힘든 부모들에게도 유효한 질문과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부모를 위한 강의, 20대가 어떻게 만들었지?
채송아(이하 채) : 게임에 중독됐던 사람이 극복 스토리를 직접 들려주는 게 이 강의의 특장점이에요. 강의에서 아이들에게 3가지 핵심 질문을 던지는데요. ‘과몰입하는 콘텐츠를 왜 좋아하는가?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그 콘텐츠 안에서 찾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라든가, ‘고친다는 개념을 고쳐야 한다’라는 컨셉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었나요?
용용이(이하 용) : 제가 어렸을 때 쓸데없는 짓 한다고 어른들한테 진짜 많이 혼났어요. 하지만, 그때 내가 왜 그런 쓸데없는 일에 빠졌는지, 당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거기서 빠져 나오는 데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물어보는 어른이 없었어요.
게임과 미디어 과몰입에 부정적인 인식만 대두되니까 ‘게임중독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와 부모님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의 옛날 생각이 났어요. 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혼자 애썼던 기간이 너무 길었어요. 좀더 일찍 알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대답을 적어 나가다 보니까 어렸을 때 일을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나는 어떻게 빠져 나왔지?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지? 일기장에 뭘 써놨지?’같은 질문이 떠올랐고, 그 대답을 정리했어요.
상담넷에서 미디어 과사용 상담 영상을 만든다고 하시길래 자녀의 마음을 대변하고 싶어서 제가 먼저 같이 해보자고 제안 드렸어요. 상담위원들과 이야기하면서 제 부모님을 설득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채 : 부모님께 어떤 지점을 설득해야 했어요?
용 : 중학교 가서 성적 떨어지고, 이성한테 관심 생기고, 친구들하고 더 놀고 싶은 거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근데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될 때까지 동생 잘 챙기고 어른스럽게 생활했기 때문에 중학교 가서 공부 안하는 걸 부모님께서 받아들이지 못하셨어요.
저를 사랑하셨지만 많이 혼내기도 하시고요. 사실, 제가 친구들에게 왕따 당했을 때 엄마 돈 훔쳐서 몰래 배달시켜 먹고 게임한 적도 있어요. 한 번은,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해서 힘들다고 엄마에게 제 마음을 표현했어요. 엄마 아빠가 그 친구랑 노는 걸 이전부터 싫어하다 보니까 “네가 그 친구 너무 믿고 어울려 다닐 때 이렇게 될 줄 알아 봤다.”고 하시는 거예요.

채 : 부모님이 용용이님에게 기대가 크셨나 봐요. 공부만 하길 바라셨어요?
용 : 공부를 아예 안 한 것도 아니예요. 340명 중에 50등 정도 하면 잘한 거 아녜요? 근데, 저는 공부가 재미 없었어요. 사람이나 사회에 호기심이 많았는데, 웹소설, 팬픽 다 나쁜 걸로 규정되고,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부모님은 노래방 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부모님께 SOS 쳤을 때, 또 뭔가 안 좋은 행동을 했을 때 차분히 앉아서 ‘엄마 아빠가 다 들어줄 수 있으니까 이야기해 봐라’는 시간을 가졌던 적이 없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도 그 당시 직장에서 복잡한 문제가 있으셨대요.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지 마라’는 말밖에 할 수 없으셨겠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이 필요했는데 아무도 없었죠. 뭘 좀 얘기하려고 하면 ‘네가 공부를 안 해서 그래.’로 귀결되고요. 그게 저에겐 결핍으로 남았어요. 다행히, 고1 때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서 문제 행동이 사라졌어요. 중학교 때부터 뭔가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공부 외의 콘텐츠를 계속 즐겼지만 나를 좀먹는 행동은 없어졌어요.
‘자녀의 게임 중독으로 고민하시는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려는 마음’으로 답변을 써내려 가다 보니 엄마 아빠 말 듣지 않고 속을 썩였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어요.
대학생 때 다시 빠진 게임 중독
채 : 강의를 들어 보면 용용이님이 중학교 때 따돌림 당하면서 ‘타격감’, ‘함께 놀 친구’를 게임에서 찾으려 했다고 분석했어요. 다행히 킥복싱을 시작하면서 그것들이 충족되자 게임중독에서 빠져나왔고요. 1차 게임중독에서 벗어난 뒤에도 완전히 끊기는 어렵지 않나요?
용 : 킥복싱 시작하고서도 게임을 가끔 했지만 고등학교 때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면서 아예 끊었어요. 운동에 재미가 붙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 이후부터 놀 사람이 있으니까 학교 끝나면 바로 도장에 가게 됐고요.
채 : 대학교 3학년 때 다시 게임 중독에 빠진 이유는 뭐예요?
용 : 2016년에, 기존 게임과 완전히 다른 ’오버워치’ 등장과 관련이 있어요. 게임 문화가 여성 유저한테 진짜 불친절하거든요.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복장이나 외형에서 노출이 심한 건 기본이고요. 아주 한정적인 역할만 주어져요. 그 당시는 유저들끼리 직접 보이스 톡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버워치는 완전히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 도입돼서 인기를 끌었죠.

애꾸눈을 가진 60대 인도 여성 저격수라든가, 근육질인데 머리가 짧은 여성 캐릭터도 처음 등장했어요. 게임이 진행되면서 컨셉 해설 영상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어요. 이 캐릭터는 왜 만들어졌는지, 게임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분석해주니까요. 거기서 제작하는 모든 영상들이 제 감성을 자극해서 그 캐릭터들을 사랑하게 됐어요.
채 : 그게 23시간까지 과몰입한 이유인가요?
용 : 직접적인 이유는 여성 게임 유저에 대한 비난, 편견이 얼마나 심한지 오버워치를 통해서 드러났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그전까지 여성 유저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게임을 하더라도 여자인 게 드러나면 무시하니까 숨기면서 했어요. 오버워치는 스토리텔링 좋아하는 여성들에게 호감을 줘서 사용자가 많아졌어요. 남성 위주일 때는 문제가 안 되던 게 여성 유저가 들어오면서 불합리한 지점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했어요.
채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불합리한가요?
용 : 여자 목소리가 들리면 게임을 일부러 망쳐요. 여자 유저가 맡는 캐릭터 이름을 생식기 이름으로 부르고요. 성희롱이 빈번하니까 여자들이 아예 말을 못해요. 남자인 척 하고요. 이 문제를 제기하고 미러링 하겠다고 나선 유저가 있었어요. 특히, 여성 유저들은 게임을 못한다는 편견이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걸 깨 보겠다고 결심했죠. 혼자 힘으로 ‘어느 레벨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휴학했어요.

채 : 휴학까지! 중학교 때처럼 결핍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적으로 다시 게임에 몰입한 건가요?
용 : 실은 그때 남자 유저들과 많이 싸웠어요. 걔네들이 나한테 욕 하니까 저도 욕하고요. 그 즈음에 강남역 사건 다큐멘터리 촬영하러 갔다가 일베 유저들하고 싸운 적이 있어요. 그게 저를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몸도 너무 안 좋아졌고요. 그래서 정신과 상담받고 그런 문제와 게임이 맞물렸어요. 심리적 불안을 게임으로 해결하려고 한 면도 있어요.
돌이켜보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계기가 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여성 유저를 만나면서부터였어요. 직접 만나서 그 사람들 이야기 듣는 게 재밌어서 게임을 점점 더 안 하게 됐죠. 사람들 이야기를 수집하러 만나면서 게임을 많이 줄였어요. 지금은 정말 취미가 됐고요. ‘중독되면 빠져 나오지 못한다, 중독되면 인생을 망친다’는 우려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삶의 다른 목표가 생기면 현실로 돌아오는 게 가능해요.
채 : 목표가 생기지 않으면 게임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든 건가요? 게임중독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데요.
용 : 속성상 모든 게임은 결국 망하게 돼 있어요. 고인물(게임을 엄청나게 오래한 고수들)이 생기니까요. 그 게임을 잘 아는 사람들이 생기고, 일부러 낮은 레벨로 가장하고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늘어요. 그러면 신입이 들어오기가 힘들어져요. 결국 게임 개발한 사업체는 서버 정리를 하게 돼요. 갑자기 서버 종료하는 게임도 많아요. 그러니까 빠져나올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다음에 다른 게임에 빠져드느냐가 문제인데 자기가 내면의 고민을 했고 내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평소에 했다면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죠.
저는 게임 과몰입이 평생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기서 끝낼 수 있는 다른 재미, 다른 목적이 주어지면 돼요. 그걸 누가 해 줄 수 있냐? 아이들이라면 어른들이 도와줄 수 있어요. 그 과정 속에서 본인이 계속 생각을 해야겠죠.

아이들은 게임하면서 무엇을 찾을까?
채 : 이 강의의 핵심 중 하나는, 미디어 콘텐츠에 과몰입하는 자녀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인데요. 왜 좋아하는가? 뭘 느끼나? 찾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에 빠진 본인을 성찰하면서 이 질문이 도출된 거잖아요. 그 질문의 답변을 용용이님에게도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게임을 왜 그렇게 좋아하나요?
용 : 저는 새로운 사람을 무작위로 만나는 걸 좋아해요. 게임할 때 여성 유저인 거 들키면 욕 먹으니까 팀 보이스 싫어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팀 보이스에 항상 들어가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렇게 소통해서 뭔가를 이뤄내는 게 좋아요. 그래서 게임을 좋아하게 됐어요.
채 : 게임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데요?
용 : 희노애락을 다아~~~! 느껴요.(웃음) 그래서 재밌을 수밖에 없어요. 현실 세계에서는 기쁨을 느끼려면 굉장히 많은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근데 게임에선 한 판만 이겨도 너무 좋고 행복해요. 특히나, ‘진짜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어, 전력적으로 너무 차이가 나, 근데 우리가 열심히 해서 그걸 해냈어!’ 그 희열감은 팀 사람들에게 애정이 샘솟게 만들어요.
화도 정말 잘 나요. 게임을 일부러 망치는 애들 보면 화가 나요. 저는 게임에서 져도 재밌고, 이기면 더 재밌어요. 사실, 협동하는 과정이 재밌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해냈어!’하고 느낄 수 있는데 그걸 방해하는 유저 만나면 너무 화가 나요. 옛날에는 같이 욕하면서 많이 싸웠어요. 지금은 힘들기 때문에 그냥 차단해요.
또 하나 좋은 점은, 별 생각 없이 큰 돈 들이지 않고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취미예요. 제가 요즘 한 달 동안 집에 갈 때 지하철 서너 정거장을 그냥 쭉 걷는데 그 시간이 되게 좋아요. 게임이 저한테 그런 거예요. 근데 가끔 성취감까지 느끼게 해주니까 더 좋죠.

채 : ‘왜 좋아하냐’, ‘찾는 게 게 뭐냐?’ 두 질문이 서로 다른데도 결국 비슷한 답변이 나오게 될 거 같아요.
용 : ‘왜 좋아하냐’는 표면적인 이유예요. 왜 빠지게 됐고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는 거죠. 세 번째 질문은 더 심화해가는 질문이에요. 내가 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그 이유가 왜 좋은지 다시 생각하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사람들과 소통이 왜 좋은지 다시 생각해 보죠.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건지,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거기에서 어느 정도 깊이를 추구하는지, 혹은 가벼움을 추구하는지, 찾을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좋아! 그래서 게임이 좋아졌어요. 내가 거기서 찾는 게 뭐야? 친구를 찾나? 처음 게임에 빠졌을 때는 나랑 시간을 보내줄 친구가 진짜 필요했어요.
대학생 때는 여성 유저 차별을 문제라고 느껴서 빠지게 됐고요. 근데, 만렙을 찍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더 깊이 중독됐죠. 여자애들이 게임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여성 유저를 하나둘씩 모으고, 직접 인터뷰하고 영상도 만들었어요. 게임이라는 세계를 거시적으로 보고 그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깊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은 거예요.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에 답을 생각하면서 나를 잘 파악해야 세 번째 질문 답까지 나올 수 있어요. 근데, 이걸 아이들이 혼자 하긴 힘들어요. 저도 대학생이 돼서야 ‘아, 내가 이 점수 만들었는데도 왜 못 빠져 나가고 있지?’하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심리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스스로에게 묻게 됐어요. 그래서 강의룰 통해 부모님들에게 요청 드리는 거예요. 아이를 고치려고만 하지말고,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해주십사 하고요.

채 : 성인으로 독립한 지금, 이제 스스로 조절하면서 취미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용 : 더 중요한 다른 목표가 있으면 조절이 되는 것 같아요. 실패와 분석을 거듭하니까요. 조절력이 생겼다기보다는 제가 원하는 걸 더 정확하게 알게 되는 과정 속에서 이뤄진 거 같아요. 게임을 조절하는 능력은 결국 자기 삶을 지속적으로 돌아보는 능력과도 맞닿아 있어요.
용용이 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강의에서 어른에게 주어지는 질문과 실전 연습 과제는 미디어 과몰입뿐 아니라 진로 고민, 몰입하는 대상 등 많은 갈등과 선택 상황에도 유용할 거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간직해야 할 질문일지 모른다. ‘너는 그걸 왜 좋아하니? 거기서 무엇을 찾니?’
오늘도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에게 간식을 내밀면서 그 마음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유의미한 대답이 한 번에 뚝딱 나오진 않겠지만, 탐정의 마음으로 계속 관찰해 봐야겠다.
게임과 미디어 과몰입 설명서 강의 바로 가기
친구 아들이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허리는 물론이고 손목까지 아파 정형외과에 다닌다는 얘길 들었다.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그는 아들이 이미 중독인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얼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20대 상근자 용용이(닉네임)를 찾아갔다. 그가 사는 건물 지하상가에 PC방이 들어올 때 개업일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게임 매니아라는 걸 알고 있던 터였다.
게임중독 아들을 둔 친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물었더니, 그는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튿날 사내 메신저로 심리상담 결과지에서나 볼 법한 긴 답변을 보내왔다. 그 답변의 내용과 깊이에 놀라, 바로 정리해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식 카페에 업로드했다. 이는 노워리상담넷 영상 콘텐츠로 발전하더니, 현재 노워리 스쿨 온라인 강의 ‘게임중독 출신의 미디어 과몰입 사용설명서’로 탄생했다. 이 강의는 작년에 339명이 수강했는데, 80%가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게임중독을 호되게 통과하면서 성찰한 용용이의 ‘살아있는 조언’이기 때문이리라.
게임뿐 아니라, 아이의 스마트폰 과사용이 고민이라면 용용이의 온라인 강의부터 듣고 이 인터뷰를 읽길 권한다. 자녀의 문화를 이해하기 힘든 부모들에게도 유효한 질문과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부모를 위한 강의, 20대가 어떻게 만들었지?
채송아(이하 채) : 게임에 중독됐던 사람이 극복 스토리를 직접 들려주는 게 이 강의의 특장점이에요. 강의에서 아이들에게 3가지 핵심 질문을 던지는데요. ‘과몰입하는 콘텐츠를 왜 좋아하는가?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그 콘텐츠 안에서 찾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라든가, ‘고친다는 개념을 고쳐야 한다’라는 컨셉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었나요?
용용이(이하 용) : 제가 어렸을 때 쓸데없는 짓 한다고 어른들한테 진짜 많이 혼났어요. 하지만, 그때 내가 왜 그런 쓸데없는 일에 빠졌는지, 당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거기서 빠져 나오는 데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물어보는 어른이 없었어요.
게임과 미디어 과몰입에 부정적인 인식만 대두되니까 ‘게임중독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와 부모님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의 옛날 생각이 났어요. 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혼자 애썼던 기간이 너무 길었어요. 좀더 일찍 알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대답을 적어 나가다 보니까 어렸을 때 일을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나는 어떻게 빠져 나왔지?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지? 일기장에 뭘 써놨지?’같은 질문이 떠올랐고, 그 대답을 정리했어요.
상담넷에서 미디어 과사용 상담 영상을 만든다고 하시길래 자녀의 마음을 대변하고 싶어서 제가 먼저 같이 해보자고 제안 드렸어요. 상담위원들과 이야기하면서 제 부모님을 설득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채 : 부모님께 어떤 지점을 설득해야 했어요?
용 : 중학교 가서 성적 떨어지고, 이성한테 관심 생기고, 친구들하고 더 놀고 싶은 거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근데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될 때까지 동생 잘 챙기고 어른스럽게 생활했기 때문에 중학교 가서 공부 안하는 걸 부모님께서 받아들이지 못하셨어요.
저를 사랑하셨지만 많이 혼내기도 하시고요. 사실, 제가 친구들에게 왕따 당했을 때 엄마 돈 훔쳐서 몰래 배달시켜 먹고 게임한 적도 있어요. 한 번은,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해서 힘들다고 엄마에게 제 마음을 표현했어요. 엄마 아빠가 그 친구랑 노는 걸 이전부터 싫어하다 보니까 “네가 그 친구 너무 믿고 어울려 다닐 때 이렇게 될 줄 알아 봤다.”고 하시는 거예요.
채 : 부모님이 용용이님에게 기대가 크셨나 봐요. 공부만 하길 바라셨어요?
용 : 공부를 아예 안 한 것도 아니예요. 340명 중에 50등 정도 하면 잘한 거 아녜요? 근데, 저는 공부가 재미 없었어요. 사람이나 사회에 호기심이 많았는데, 웹소설, 팬픽 다 나쁜 걸로 규정되고,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부모님은 노래방 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부모님께 SOS 쳤을 때, 또 뭔가 안 좋은 행동을 했을 때 차분히 앉아서 ‘엄마 아빠가 다 들어줄 수 있으니까 이야기해 봐라’는 시간을 가졌던 적이 없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도 그 당시 직장에서 복잡한 문제가 있으셨대요.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지 마라’는 말밖에 할 수 없으셨겠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이 필요했는데 아무도 없었죠. 뭘 좀 얘기하려고 하면 ‘네가 공부를 안 해서 그래.’로 귀결되고요. 그게 저에겐 결핍으로 남았어요. 다행히, 고1 때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서 문제 행동이 사라졌어요. 중학교 때부터 뭔가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공부 외의 콘텐츠를 계속 즐겼지만 나를 좀먹는 행동은 없어졌어요.
‘자녀의 게임 중독으로 고민하시는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려는 마음’으로 답변을 써내려 가다 보니 엄마 아빠 말 듣지 않고 속을 썩였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어요.
대학생 때 다시 빠진 게임 중독
채 : 강의를 들어 보면 용용이님이 중학교 때 따돌림 당하면서 ‘타격감’, ‘함께 놀 친구’를 게임에서 찾으려 했다고 분석했어요. 다행히 킥복싱을 시작하면서 그것들이 충족되자 게임중독에서 빠져나왔고요. 1차 게임중독에서 벗어난 뒤에도 완전히 끊기는 어렵지 않나요?
용 : 킥복싱 시작하고서도 게임을 가끔 했지만 고등학교 때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면서 아예 끊었어요. 운동에 재미가 붙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 이후부터 놀 사람이 있으니까 학교 끝나면 바로 도장에 가게 됐고요.
채 : 대학교 3학년 때 다시 게임 중독에 빠진 이유는 뭐예요?
용 : 2016년에, 기존 게임과 완전히 다른 ’오버워치’ 등장과 관련이 있어요. 게임 문화가 여성 유저한테 진짜 불친절하거든요.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복장이나 외형에서 노출이 심한 건 기본이고요. 아주 한정적인 역할만 주어져요. 그 당시는 유저들끼리 직접 보이스 톡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버워치는 완전히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 도입돼서 인기를 끌었죠.
애꾸눈을 가진 60대 인도 여성 저격수라든가, 근육질인데 머리가 짧은 여성 캐릭터도 처음 등장했어요. 게임이 진행되면서 컨셉 해설 영상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어요. 이 캐릭터는 왜 만들어졌는지, 게임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분석해주니까요. 거기서 제작하는 모든 영상들이 제 감성을 자극해서 그 캐릭터들을 사랑하게 됐어요.
채 : 그게 23시간까지 과몰입한 이유인가요?
용 : 직접적인 이유는 여성 게임 유저에 대한 비난, 편견이 얼마나 심한지 오버워치를 통해서 드러났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그전까지 여성 유저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게임을 하더라도 여자인 게 드러나면 무시하니까 숨기면서 했어요. 오버워치는 스토리텔링 좋아하는 여성들에게 호감을 줘서 사용자가 많아졌어요. 남성 위주일 때는 문제가 안 되던 게 여성 유저가 들어오면서 불합리한 지점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했어요.
채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불합리한가요?
용 : 여자 목소리가 들리면 게임을 일부러 망쳐요. 여자 유저가 맡는 캐릭터 이름을 생식기 이름으로 부르고요. 성희롱이 빈번하니까 여자들이 아예 말을 못해요. 남자인 척 하고요. 이 문제를 제기하고 미러링 하겠다고 나선 유저가 있었어요. 특히, 여성 유저들은 게임을 못한다는 편견이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걸 깨 보겠다고 결심했죠. 혼자 힘으로 ‘어느 레벨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휴학했어요.
채 : 휴학까지! 중학교 때처럼 결핍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적으로 다시 게임에 몰입한 건가요?
용 : 실은 그때 남자 유저들과 많이 싸웠어요. 걔네들이 나한테 욕 하니까 저도 욕하고요. 그 즈음에 강남역 사건 다큐멘터리 촬영하러 갔다가 일베 유저들하고 싸운 적이 있어요. 그게 저를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몸도 너무 안 좋아졌고요. 그래서 정신과 상담받고 그런 문제와 게임이 맞물렸어요. 심리적 불안을 게임으로 해결하려고 한 면도 있어요.
돌이켜보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계기가 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여성 유저를 만나면서부터였어요. 직접 만나서 그 사람들 이야기 듣는 게 재밌어서 게임을 점점 더 안 하게 됐죠. 사람들 이야기를 수집하러 만나면서 게임을 많이 줄였어요. 지금은 정말 취미가 됐고요. ‘중독되면 빠져 나오지 못한다, 중독되면 인생을 망친다’는 우려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삶의 다른 목표가 생기면 현실로 돌아오는 게 가능해요.
채 : 목표가 생기지 않으면 게임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든 건가요? 게임중독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데요.
용 : 속성상 모든 게임은 결국 망하게 돼 있어요. 고인물(게임을 엄청나게 오래한 고수들)이 생기니까요. 그 게임을 잘 아는 사람들이 생기고, 일부러 낮은 레벨로 가장하고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늘어요. 그러면 신입이 들어오기가 힘들어져요. 결국 게임 개발한 사업체는 서버 정리를 하게 돼요. 갑자기 서버 종료하는 게임도 많아요. 그러니까 빠져나올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다음에 다른 게임에 빠져드느냐가 문제인데 자기가 내면의 고민을 했고 내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평소에 했다면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죠.
저는 게임 과몰입이 평생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기서 끝낼 수 있는 다른 재미, 다른 목적이 주어지면 돼요. 그걸 누가 해 줄 수 있냐? 아이들이라면 어른들이 도와줄 수 있어요. 그 과정 속에서 본인이 계속 생각을 해야겠죠.
아이들은 게임하면서 무엇을 찾을까?
채 : 이 강의의 핵심 중 하나는, 미디어 콘텐츠에 과몰입하는 자녀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인데요. 왜 좋아하는가? 뭘 느끼나? 찾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에 빠진 본인을 성찰하면서 이 질문이 도출된 거잖아요. 그 질문의 답변을 용용이님에게도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게임을 왜 그렇게 좋아하나요?
용 : 저는 새로운 사람을 무작위로 만나는 걸 좋아해요. 게임할 때 여성 유저인 거 들키면 욕 먹으니까 팀 보이스 싫어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팀 보이스에 항상 들어가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렇게 소통해서 뭔가를 이뤄내는 게 좋아요. 그래서 게임을 좋아하게 됐어요.
채 : 게임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데요?
용 : 희노애락을 다아~~~! 느껴요.(웃음) 그래서 재밌을 수밖에 없어요. 현실 세계에서는 기쁨을 느끼려면 굉장히 많은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근데 게임에선 한 판만 이겨도 너무 좋고 행복해요. 특히나, ‘진짜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어, 전력적으로 너무 차이가 나, 근데 우리가 열심히 해서 그걸 해냈어!’ 그 희열감은 팀 사람들에게 애정이 샘솟게 만들어요.
화도 정말 잘 나요. 게임을 일부러 망치는 애들 보면 화가 나요. 저는 게임에서 져도 재밌고, 이기면 더 재밌어요. 사실, 협동하는 과정이 재밌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해냈어!’하고 느낄 수 있는데 그걸 방해하는 유저 만나면 너무 화가 나요. 옛날에는 같이 욕하면서 많이 싸웠어요. 지금은 힘들기 때문에 그냥 차단해요.
또 하나 좋은 점은, 별 생각 없이 큰 돈 들이지 않고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취미예요. 제가 요즘 한 달 동안 집에 갈 때 지하철 서너 정거장을 그냥 쭉 걷는데 그 시간이 되게 좋아요. 게임이 저한테 그런 거예요. 근데 가끔 성취감까지 느끼게 해주니까 더 좋죠.
채 : ‘왜 좋아하냐’, ‘찾는 게 게 뭐냐?’ 두 질문이 서로 다른데도 결국 비슷한 답변이 나오게 될 거 같아요.
용 : ‘왜 좋아하냐’는 표면적인 이유예요. 왜 빠지게 됐고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는 거죠. 세 번째 질문은 더 심화해가는 질문이에요. 내가 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그 이유가 왜 좋은지 다시 생각하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사람들과 소통이 왜 좋은지 다시 생각해 보죠.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건지,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거기에서 어느 정도 깊이를 추구하는지, 혹은 가벼움을 추구하는지, 찾을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좋아! 그래서 게임이 좋아졌어요. 내가 거기서 찾는 게 뭐야? 친구를 찾나? 처음 게임에 빠졌을 때는 나랑 시간을 보내줄 친구가 진짜 필요했어요.
대학생 때는 여성 유저 차별을 문제라고 느껴서 빠지게 됐고요. 근데, 만렙을 찍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더 깊이 중독됐죠. 여자애들이 게임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여성 유저를 하나둘씩 모으고, 직접 인터뷰하고 영상도 만들었어요. 게임이라는 세계를 거시적으로 보고 그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깊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은 거예요.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에 답을 생각하면서 나를 잘 파악해야 세 번째 질문 답까지 나올 수 있어요. 근데, 이걸 아이들이 혼자 하긴 힘들어요. 저도 대학생이 돼서야 ‘아, 내가 이 점수 만들었는데도 왜 못 빠져 나가고 있지?’하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심리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스스로에게 묻게 됐어요. 그래서 강의룰 통해 부모님들에게 요청 드리는 거예요. 아이를 고치려고만 하지말고,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해주십사 하고요.
채 : 성인으로 독립한 지금, 이제 스스로 조절하면서 취미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용 : 더 중요한 다른 목표가 있으면 조절이 되는 것 같아요. 실패와 분석을 거듭하니까요. 조절력이 생겼다기보다는 제가 원하는 걸 더 정확하게 알게 되는 과정 속에서 이뤄진 거 같아요. 게임을 조절하는 능력은 결국 자기 삶을 지속적으로 돌아보는 능력과도 맞닿아 있어요.
용용이 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강의에서 어른에게 주어지는 질문과 실전 연습 과제는 미디어 과몰입뿐 아니라 진로 고민, 몰입하는 대상 등 많은 갈등과 선택 상황에도 유용할 거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간직해야 할 질문일지 모른다. ‘너는 그걸 왜 좋아하니? 거기서 무엇을 찾니?’
오늘도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에게 간식을 내밀면서 그 마음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유의미한 대답이 한 번에 뚝딱 나오진 않겠지만, 탐정의 마음으로 계속 관찰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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