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교육 불안, 지역모임에서 잠재웠어요 - 용인·수지 지역모임 서양희 선생님

 

팬데믹 초기인 2020년, 온라인으로 모이기 시작해서 2년 넘도록 꾸준히 모이고 있는 등대지역모임이 있습니다. 바로 경기도 용인·수지 지역모임입니다. 모임을 개척해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인데, 지난 봄부터는 대면모임으로 한 달에 한 번씩 7명이 꾸준히 모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두 자녀의 엄마이자 화가로 활동하는 서양희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용인으로 향했습니다.

 

최성아(이하 최)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어떻게 아시게 됐나요? 어떤 계기로 지역모임에 참여하시게 된 건지도 궁금하고요.

서양희(이하 서) :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탐색하다가 사교육걱정을 알게 됐어요.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였던 거 같아요. 대안교육에 대한 갈증이 계속 있었어요. 공교육에서도 아이와 내가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게 할 힘이 필요하더라고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교육걱정 후원을 시작했죠. 단체의 뉴스레터(주간 노워리)를 보고 용인·수지 지역모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공동육아에서 알고 지낸 아이 친구 엄마가 후원회원인 걸 알고 있었어요. 같이 지역모임에 나가보자 해서 참여하게 됐죠.

 

같이 살 사람들이니까 다 이어진다고

 

최: 등대 지역모임의 어떤 점이 특별히 좋으셨어요?

서: 저희 지역 모임이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구은정 선생님께서 초기에 등대장 역할을 해주셨어요. 선생님은 자녀들이 다 커서 교육운동에서 멀어질 수 있잖아요. 어떤 이유로 이걸 계속 해나가시는지 여쭤봤더니, 내 아이는 다 컸지만 지금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니까 서로 이어져 있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게 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실제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코로나 시절이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을 거 같지만, 온라인이어서 도리어 꾸준히 만날 수 있었어요. 대면모임은 못 나올 때도 있으니까요. 코로나라서 힘들기도 했고 뭔가 얘기할 출구가 필요했는데,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최: 등대 모임에서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서: 지난 4월에 ‘공부 갈등 해결-부모 성장 프로젝트’(사교육걱정에서 주최하는 자녀의 학습 고민과 해법 모색을 위한 집단상담 프로그램)를 저희 지역모임에서 시범사업으로 했거든요.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모두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얘기 나누면서, 저도 아이들 관계에서 힘든 부분, 이건 좀 아닌데 싶었던 부분을 많이 성찰했어요.

 

영화 <4등>의 한 장면

최: 부모 성장 프로젝트에서 어떤 부분이 인상 깊으셨어요?

서: 지금 바로 생각나는 건 영화 <4등>의 한 부분을 본 후, 극중 사건이나 배경에 누구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지 각자 적었어요. 다 쓴 후에 서로 얘기 나누면서, 놀랍게도 각자의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생각이 변한다는 건 정말 어렵잖아요. 근데 1시간의 대화를 통해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게 드라마틱했어요. 멋지고요.

 

최: 선생님은 화가로 활동하고 계신데, 미술을 전공하셨어요? 아니면 어떤 계기로 그림을 그리게 되셨나요?

서: 원래는 의류학을 전공했고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거래처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죠. 거래처 공장이랑 회사가 다 중국에 있으니 결혼해서 남편 따라 바로 중국 광저우에서 살게 됐어요. 중국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바로 임신을 했어요. 회사에서 그만뒀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슬프게도 일을 그만뒀죠. 거기서 큰 딸을 6살까지 키웠고요.

 

광저우는 날씨도 좋고 아파트에 수영장까지 있으니까 아이들과 놀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는데, 저는 사람과의 관계 맺기가 어렵더라고요. 내가 만들어 놓은 관계가 아니라 남편의 관계 안에 그냥 뚝 떨어진 거니까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둘째가 생기고 나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자리를 잡았어요.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때 즈음, 공동육아라는 걸 알게 됐고요. 대안교육의 세계에 눈을 뜬 거죠. 둘째가 5살 될 무렵에 저한테 큰 변화가 시작됐어요. 제가 ‘그림책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거든요. 공동육아도 시작하고, 인문학 지역공동체인 문탁에서도 활동했고요.

 

공동육아는 부모들이 직접 운영하니까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힘들긴 했는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뭔가 나를 변화시키고 싶은 욕심이 엄청 컸나 봐요. 제가 다닌 SI그림책 학교는 1년 반 과정인데 자격증이나 졸업장 같은 건 없고 그림책 더미북(견본 책)을 하나 만들고 졸업 전시하면 과정을 마치게 돼요. 막상 졸업하고 나서 그림책을 계속 만들기엔 제 역량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림책 작업을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그림을 그렸어요. 저는 색연필로 작업하고 있어요. 졸업 작품은 오일물감을 썼는데, 오일 물감을 버릴 때마다 기름이 둥둥 뜨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산호초를 따라서’라는 환경 다큐를 봤는데 그걸 보고 많이 울었어요. 크게 각성한 계기가 된 거죠. 그래서 산호랑 물고기랑 엄청나게 그리기 시작했어요.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면서 전시회 제안을 받게 돼, 작년 4월 첫 개인전을 열었어요. 올 봄에 여기 문탁에서도 전시했고요.

 

공부하는 능력보다 서로 어울려서 살 수 있게

 

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고민이 되는 지점은 어떤 부분인가요?

서: 여전히 좀 불안한 게 고민이에요. 엄마로서 어떻게 도와주는 게 진짜 도와주는 건지 답이 없잖아요. 지금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능력주의로 사람들을 몰아가서 다른 방향으로 키우고 싶은데, 정작 아이한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강요하는 거 같다는 번민도 생기고요.

 

큰 애는 이제 중3이에요. 초등학교 때는 미술이나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공부 쪽으로는 독서 논술을 했었어요. 지금은 사교육을 아무 것도 안해요. 계속 혼자 공부했는데 지금까지 꽤 잘 해왔어요. 그런데 이번 중간고사 수학 시험에 아이가 너무 충격을 받은 거에요. 나름대로 문제집도 3권이나 풀면서 공부했는데, 시험 문제를 받아보니 낯선 문제들이 정말 많았대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니까 시간 내 다 해결하지 못할까 봐 긴장이 됐나 봐요. 시간 압박 때문에 힘들면 고등학교 가기 전에 사교육 도움을 받아보자 얘기하고 있어요.

 

큰 애가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이우학교가 가까이 있어서 지원했는데, 추첨에서 떨어지고 제일 친한 친구 두 명은 됐어요. 고등학교도 지원해볼 생각이에요. 공부만 강조하기보다 어울려서 살게 해주고 싶거든요.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니까 다양한 친구들을 알아가는게 중요하잖아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만 만나다 보면 다른 환경이 엄연히 있는데도 볼 수가 없으니까요.

 

문탁'의 다양한 공간들(좌),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공예품과 서양희 선생님 작품이 전시돼 있다.(우)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게 현혹하는 사회

 

최: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 공간이 인문학 지역공동체 '문탁'의 공방이라고 하셨는데요. 문탁에서 선생님은 어떤 공부를 하시는 거예요?

서: 요즘 제가 하는 건 기후 위기 프로젝트예요. 그 주제를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환경 영화도 보고 에세이를 써요. 공부의 시작은 인류학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있잖아요. 경쟁도, 기후 위기도 자본주의에서 비롯됐는데 그걸 좀 멈추고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보자고 시작했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모든 게 다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육도 이어져 있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도 이어져 있고요. 돈 많고 과시적인 삶을 사는게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내가 원하지도 않는 삶을 사람들이 광고하고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드니까 거기에 현혹돼요. 못 따라가면 낙오자가 되는 것 같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처럼 만들어가고요. 그러다보니 자연이나 환경을 함부로 쓰게 되죠.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가 인정하는 일을 못하고 있지만, 활동가로서 인정받는 부분이 있으니까 또 다른 성취감이 있어요. 돈을 벌 수 없을 때 속상한 면이 있어요. 그런데 내 스스로 속상한 게 아니라 사회나 타인의 시선 때문에 속상하게 된 거 같아요.

예를 들면 돌봄 노동의 가치는 정말 큰 거잖아요. 그게 없으면 이 사회는 주저앉을지도 몰라요. 사회적으로는 굉장히 저평가되면서 실상 여자들한테 엄청 기대잖아요. 애가 잘못되면 ‘엄마 탓이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요.

그림 그리고, 문탁이나 다른 활동들도 하다보니 돈 버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 작년 첫 전시회에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느낀 소감을 전해주는데, 제가 생각지도 못한 좋은 메시지들이 많은 거에요. 그럴 때 진짜 엄청 힘이 돼요. 환경 문제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을 앞으로도 계속 그릴 예정이에요.

 


사람이 더 모여야 목소리가 커지잖아요

 

최: 마지막으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서: 지난 5월에 광화문에서 열린 경쟁교육제로캠페인 출범식에 가족들이랑 갔거든요. 저는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가 변화의 기미가 안 보이면 힘이 쫙 빠지곤 해요. 그런데 지역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교육에 대한 불안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어서 굉장히 만족해요. 하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목소리는 아직 작은 것 같아요. 사람이 모여야 목소리가 커지는데, 사람이 잘 안 모이니까요. 어느 정도 모이면 그 다음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질 수 있는데 그만큼 아직 차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힘이 빠지는 사람도 많고요. 나의 참여가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사교육걱정의 목소리가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정말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테니까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는 하겠지 생각하며 참여를 미루는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지 않아 아직 목소리가 작은거 같다는 서양희 선생님 말씀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저에게도 도전이 됐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우리 스스로 만들기 위해 더 용기 내야겠습니다.

 

■ 글_ 노워리기자단 최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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