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순수한 열정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을까 - 인천지역모임 구옥정 선생님

유독 부러운 등대지역모임이 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꼭 만나는 인천지역모임. 코로나 2년 반 동안 월1회 모임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코로나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야외에서라도 모임을 이어갔다고 한다. 인천 지역모임원 가운데, 남편이 적극적으로 아이를 돌보며 아내가 모임에 참여하도록 응원하는 분이 있다니 유독 궁금해졌다. 바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구옥정 선생님이다. 


순수한 남편을 만나 시작하게 된 교육운동


용 : 안녕하세요? 구옥정 선생님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구 : 순전히 남편 때문에 알게 되었어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이면서도 교육운동이나 적극적 활동에 관심이 없었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았어요. 20대부터부터 사회운동이나 노조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기부를 통해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 교육으로 관심이 집중되더라구요. 교육 분야를 공부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알게 됐고 마침 2017년에 인천에서 지역 등대강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가족이 함께하는 모임이 되었죠.


용 : 남편께서 사회 변화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어떤 분인지 궁금해요.

구 : 평범한 회사원이에요. 청년 시절부터봉사활동을 했고 어딘가에 꾸준히 기부를 해왔어요. 지금도 물론 그렇고요.


용 : 어쩐지 순수한 이상주의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 : 맞아요. 순수한 사람이에요. 지금은 그런 사람이 정말 필요한 시대 같아요. 저는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죠.(웃음) 근데, 이런 사람과 사니까 좀 더 순수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용 : 순수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 사교육걱정과 함께 한다니 반갑네요. 후원회원으로 가입하신 후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구 : 특별한 활동보다는 꾸준히 지역모임에 참여했어요. 2019년엔 제가 등대장(지역모임 리더)도 했고요. 사교육걱정에서 캠페인을 펼칠 때마다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참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2019년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운동하면서 ‘평등선언문 낭독의 날’에는 유모차 끌고, 4살, 7살 아들이랑 온가족이 함께 갔죠. 광화문도 가고, 청와대도 가고요.


용 : 그 중에서 어떤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구 : 2018년, 교육 공약 되찾기 촛불 문화제요. 마음은 슬펐지만 죽어가는 공약을 살리기 위해 참석했고, 참석하신 다른 회원들과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게 몸으로 느껴졌달까.


용 : 대입개편안 공론화 과정이나 결과가 이상하게 흐르면서 2018년은 참 답답했었죠.

구 : 그 다음으로 기억나는 일은 영유아 소책자가 발행됐던 2019년에 인천대공원에 가서 배포운동했던 거요. 제 작은 힘까지 더해져서 아이들에게 놀 권리를 찾아주자는 목소리가 빛을 발하고 있다고 믿어요.



조금씩 조금씩 빛을 쏘아 올리는 인천등대


용 : 인천 등대지역모임은 어떻게 운영하시는지 궁금해요. 초창기 모습과 요즘은 어떻게 다른지도요.

구 : 초창기에는 송도 신도시 분들이 많으셨어요. 인천에서 사교육이 제일 많은 곳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사교육에 의지하게 되다보니 스스로 불편감을 느끼시더라고요. 아마 다른 지역모임도 비슷한 고민이 있으실 거예요. 이후 구월동 한살림과 결합하면서 거점 지역을 옮겼어요.


용 : 저도 큰아이가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 교육 현실이라는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어요. 지금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구 : 지금은 월 1회 모임을 해요. 그동안 많은 걸 시도했는데 현재는 사교육걱정에서 매달 나오는 등대나눔자료를 주로 읽고요. 앞풀이로 각자의 삶을 나누는데 한 달 동안 읽은 책이라든가 기사라든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요. 그렇게 엄마아빠들이 모임을 하고 있으면 따라온 아이들은 저희끼리 놀아요.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교류를 하니 좋더라고요. 모임을 마치면 같이 밥을 해 먹어요. 한살림 동아리로 등록돼 있어서 식자재나 간식거리를 지원받기도 했어요. 직접 밥을 지어 식사를 함께 하니 큰 힘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모임을 이어오다 등대장인 최영이 선생님이 마을 공유공간 '지음'을 마련했어요. 


용 : 와, 공간까지 마련하시다니!

구 : 마을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어른들도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줄  공간이에요. 지금 등대장을 맡고 있는 최영이 선생님이 갖고 있는 꿈 중 하나가 마을에서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일구어내는 일이었거든요. 몇 년간 마을의 작은도서관도 생각했지만 그게 정말 쉽지 않아 방향을 변경하고, 결국 공간을 장만하셨어요. 사교육걱정 없이 교육활동을 꾸려볼 수도 있고, 지역 문화를 함께 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려고요.

공간 마련하는 과정에만 몇 년이 걸렸지만 마을에서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계속 찾고 모았어요. 아이 어린이집, 유치원, 생협 마을 모임에서 만나는 엄마들과 튼튼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면서 책모임도 하고 등대 모임도 권하고요. 뜻 맞는 분들과 돈을 모아서 마련한 공간이에요. 인테리어도 셀프로 하다 보니, 모임원들은 물론 배우자들도 애써 주셨죠. 가구 주방용품은 주워오기도 하고 기증도 받았고요. 한 단계 한 단계마다 손수 노력을 쌓아 올려 만든 소중한 공간이에요. 

용 : 공간 이름이 '지음'인데, 무슨 뜻인가요?

구 : '짓다'의 명사형인데요. 우리가 '짓다'라는 동사를 ' 밥을 짓다, 옷을 짓다, 집을 짓다'처럼 삶에 필수적인 것을 만들 때 쓰거든요. 그만큼 삶에서 중요한 공간이라는 뜻을 담았어요.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친구라는 지음(知音)의 의미도 있고요. 서로 친한 사람들이 모이는 삶의 필수 공간이란 뜻이에요.


용 :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계속 이어나가는 건 보통 노력으로는 안될 텐데 정말 성실하게 쌓아 올린 힘이 느껴져요. 그게 바로 인천등대를 단단하게 만든 거 같고요.

구 : 사실, 늘 사람이 많았던 건 아니에요. 최영이 선생님과 단 둘이서 줌을 켜고 모임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 말고도 누군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믿음이 모임을 지탱한 것 같아요. 그러다 주말모임과 평일 낮 모임, 검단 지역모임까지 총 3개의 지역모임으로 확장된 셈이죠.



생각지 못한 것을 발견한 코로나 시절


용 : 초등학교 교사이시니 학교 생활 이야기를 안 여쭤볼 수가 없네요. 2년 반 동안 코로나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구 : 누구나 다 그랬지만 학교 교사들은 얼굴에 정면으로 공을 맞는 것 같았어요. 그냥 맞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네요. 월요일부터 당장 어떻게 된다더라는 소식을 일요일 뉴스 속보로 받고 월요일에야 공문으로 확인하는 날의 연속이었어요. 다음날 등교를 하는지, 출석과 방역 체크를 어떻게 하는지, 온라인 수업은 또 어떤 방식으로 구성해야 하는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환경이었죠. 그런 위기 상황에 교사들은 똘똘 뭉쳐서 어떻게든 해나갔어요. 많이 힘들었지만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어요. 코로나 상황이 아니어도 적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도 익혔고요.


용 :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힘이 있으신 거 같아요.

구 : 수업 방식이 온라인으로 변하면서 이전에는 말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던 학생 몇몇이 글로는 자기 생각을 곧바로 표현하는 것도 발견했어요. 아이들이 다 같지 않잖아요.


용 : 코로나 시기에 학력격차가 많이 벌어지고, 대면수업으로 전환됐을 때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던데, 실제 경험해보시니 어땠나요?

구 : 코로나 시기 이후 저는 계속 저학년을 맡았어요. 그러다보니 아이들간 학력 격차가 크게 난다기보다는 학습하는 자세를 기르지 못했다는 걸 크게 느껴요.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입학한 현재 3학년 아이들은 대면 수업 시작됐을 때 연필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저학년은 2년 동안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공부한 거잖아요. 등교해서도 마스크 쓰고 가림막 치고 있던 터라 짝도, 모둠활동도 없이 3학년까지 온 거에요. 연필을 정말 힘들게 잡고,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하죠. 나름 되게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힘들고요. 모두 다 이 시기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불쌍하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아이들은 순수한 열정으로 나름의 방법을 찾아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사회의 부품으로 자라지 않기를


용 : 10살, 7살두 아들이 대안학교에 다닌다고 들었어요. 공교육에 몸담고 계신데 큰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과정도 궁금해요.

구 : 저는 사실, 인천에서 공교육에 순응하며 큰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랐어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현재 교육 시스템을 매우 신뢰하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제 남편은 서울 잠실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힘들었나 봐요. 자신이 경험한 그런 교실을 아이가 다닌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는 거예요. 그 과정을 절대 겪게 하고 싶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얘기하더라고요. 저도 일정 부분 공감했어요.

어느 날 남편이 대안교육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고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말하더라구요. 저는 우리나라 공교육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동료 선생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믿고 보낼 수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제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으니 마찰도 있었어요. 제 직업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한 2년 동안 반대했어요. 그런데 결국 더 순수하고, 더 열정적인 사람이 이기게 되더라고요.

남편은 아이들이 현재 교육 시스템 안으로 들어갔을 때, 결과적으로 뒤따르는 안타까운 현실을 답습하게 될거라고 했어요. 의도치 않아도 아이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하고, 줄 세우기 하는 과정 속에서 공부하게 만들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용 : 부정할 수 없어서 더 슬픈 현실이에요. 그렇다면 대안학교는 일반 학교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구 : 아이가 다니는 발도르프 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교과서가 없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줄 세우는 평가를 안 해요. 그대신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해 매우 자세하고, 구체적인 평가를 하죠. 또 하나는 미디어를 금지해요. 물론 가정에서도 실천해야 하는 부분이죠. 제가 학교에서 수업할 때 아무리 좋은 유튜브 콘텐츠라도 앞에 광고가 들어가는 것이 정말 불편하고 미안했거든요. 미디어를 접촉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광고를 볼 일이 없어요. 광고는 누구나 소비자로 만들고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잖아요. 자신도 스스로에게 가치를 매겨 어딘가에 팔려가 써먹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기도 하고요.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공교육에서도 이 거대한 사회에서 네가 사용될 부품의 자리를 잘 찾으라는 철학이 있는 것 같아요. 4차산업 관련 교육의 패러다임도 미래에 이런 분야가 떠오르니 경제 가치를 신장시킬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관점으로 말하고요. 반면, 이 학교는 한 아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무엇을 배우고 싶어하는지 아이 성장에 관점을 맞추는 것이 다른 철학인 것 같아요.


용 : 그런데 상급학교로 진학하거나 사회로 나갈 때 예상되는 어려움이 있지 않나요?

구 : 네 있죠. 지금 다니는 학교는 8학년을 마치면 졸업하고, 9~12학년까지 더 다닐 수 있어요. 높은 학년일수록 학생 수는 적어져요. 그럼에도 현재의 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상급학년도 탄탄한 교육과정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또, 부모 교육이 의무예요. 매달 담임 선생님과 아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춘기 교육이라든가 아이들이 고르게 발달하기 위해서 가정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부모들이 의무적으로 교육을 들어요. 그 과정에서 각 가정의 교육 철학도 공유하고 서로 성장할 수 있죠.

구 : 제가 추구하는 삶이 이상적으로만 보일 수도 있어요. 저는 우리의 삶이 y=x²의 그래프처럼 가파른 기울기로 계속 이상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죽을 때까지 가도 이데아에 도달할 수는 없겠죠. 예전에 송인수 대표님이 '2022년에는 불필요한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고 하신 말을 저는 믿었거든요. 하지만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죠. '이루지 못했으니 나는 이 길을 안가겠어'라고 할 수 있어요. 불필요한 사교육 안 해서 좋은 대학 못갈 수 있을 거고요. 내 눈 앞에서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저는 이상으로 가까이 가고 있어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라는 질문이 깊어지는 시절이다. 순수함과 열정, 꾸준함이 답일까 의구심마저 깊어질 때, 구옥정 선생님 가족들은 삶으로 대답한다. 이 자리를 지키며 걸어가는 것이 소중하다고. 이상을 향해 가는 것이 멀지만 언젠가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 글_노워리기자단 용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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