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아이를 보다가 서열이 인식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 집단상담 중-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일 년간 주 5일 운동(?)을 했다. 발레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예술이지만 월 수 금을 발레, 화목은 수영을 다녔는데 발레는 아이가 좋아서 갔고 수영은 내가 시켜서 갔다. 아이는 가끔 수영 가기 싫어했지만 나는 매우 공을 들여서 아이를 수영장에 들여보냈다. 수영장에 가기까지가 힘들지 친구들이랑 샤워 끝나고 노는 재미에 그럭저럭 잘 다녔다. 1년을 다니고 아이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래, 이 정도 했는데도 하기 싫다면 너는 수영이랑 안 맞는 모양이라며 수영을 그만두는 것을 받아들였다. 3년 정도는 시키고 싶었고 또는 선수반에 갈 수 있다면 보내고 싶었던 나로서는 수영을 이제 그만두겠다는 것은 일종의 포기 선언에 가까웠다.
막상 수영을 그만두니 심심했던지 몇 달 후 아이는 다시 수영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수영장에 문의를 하니 원래 아이가 다니던 반은 접수 마감이 되었고 추천해 주는 다른 반에 등록을 했다. 반을 낮춰서 등록하길 바랐지만 중급반 티오가 없어서 갈 수 있는 반은 상급반 하나였고 일 년 정도 다녔으니 괜찮을 거라고 수영 선생님은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웬걸. 그 반 친구들은 접영을 한참 하고 있는데 따님은 웨이브가 전혀 안 되신다. ㅠㅠㅠㅠㅠㅠㅠ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나를 찾으시더니 이 반에서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관람석에서 아이의 수준을 눈으로 확인하긴 했지만 정말 그렇다는 말을 듣는 순간 수영 그게 뭐라고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학원에 다니려면 입학 테스트를 봐야하고 엄마들이 학원 반 레벨로 자존심 상해하고 아이에게 실망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영어나 수학도 아닌 수영에서 아이의 서열을 확인하는 순간 내가 느꼈던 실망감과 책임감, 창피함 등의 감정의 강도는 꽤 세어서 당황스러웠다. 결국 그날 일로 수영을 포기했다는 아쉬움에 그 기간 동안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는 결론까지 덧칠하였다.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이겨내길 바랐지만 아이가 못하겠다고 말하는 순간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 집 아이가 거기까지 가느라 얼마나 애썼을지를 생각해 보니 1년이나 수영을 다닌 내 아이도 기특한데 지나온 길은 보지 못하고 나아갔으면 하는 길만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엄마와 나 사이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잘난 줄 알고 있었던 딸의 서열이 인식되는 순간 부모가 겪는 실망을 고스란히 느꼈고 그런 순간은 상처가 되어서 오랫동안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결과가 과정을 잡아먹는 슬픔. 평가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자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계속 발견해가는 과정에 있다.
1학년 여름 방학, 겨울 방학. 2학년 여름 방학. 아이는 아침 9시에 나와 함께 수영을 다녔고 순간순간 우리는 수영장에서 즐거웠고 수영을 마치고 나와서 종종 들른 맞은편 카페에서도 좋았다. 그 깨알 같은 기쁨은 증발했고 수영에 관한 마지막 결론은 너는 수영은 아닌가 보다였다. 1년이나 수영을 다닌 아이에게 엄마가 요구했던 기준이 너무 높아서 아이의 성취를 실패로 둔갑시켜 버렸다.
앞으로 아이가 받을 무수한 등급. 그 서열 앞에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글로 남긴다.
"수정합니다. 아이는 일 년이나 수영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수영을 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
"있는 그대로 아이를 보다가 서열이 인식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 집단상담 중-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일 년간 주 5일 운동(?)을 했다. 발레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예술이지만 월 수 금을 발레, 화목은 수영을 다녔는데 발레는 아이가 좋아서 갔고 수영은 내가 시켜서 갔다. 아이는 가끔 수영 가기 싫어했지만 나는 매우 공을 들여서 아이를 수영장에 들여보냈다. 수영장에 가기까지가 힘들지 친구들이랑 샤워 끝나고 노는 재미에 그럭저럭 잘 다녔다. 1년을 다니고 아이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래, 이 정도 했는데도 하기 싫다면 너는 수영이랑 안 맞는 모양이라며 수영을 그만두는 것을 받아들였다. 3년 정도는 시키고 싶었고 또는 선수반에 갈 수 있다면 보내고 싶었던 나로서는 수영을 이제 그만두겠다는 것은 일종의 포기 선언에 가까웠다.
막상 수영을 그만두니 심심했던지 몇 달 후 아이는 다시 수영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수영장에 문의를 하니 원래 아이가 다니던 반은 접수 마감이 되었고 추천해 주는 다른 반에 등록을 했다. 반을 낮춰서 등록하길 바랐지만 중급반 티오가 없어서 갈 수 있는 반은 상급반 하나였고 일 년 정도 다녔으니 괜찮을 거라고 수영 선생님은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웬걸. 그 반 친구들은 접영을 한참 하고 있는데 따님은 웨이브가 전혀 안 되신다. ㅠㅠㅠㅠㅠㅠㅠ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나를 찾으시더니 이 반에서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관람석에서 아이의 수준을 눈으로 확인하긴 했지만 정말 그렇다는 말을 듣는 순간 수영 그게 뭐라고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학원에 다니려면 입학 테스트를 봐야하고 엄마들이 학원 반 레벨로 자존심 상해하고 아이에게 실망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영어나 수학도 아닌 수영에서 아이의 서열을 확인하는 순간 내가 느꼈던 실망감과 책임감, 창피함 등의 감정의 강도는 꽤 세어서 당황스러웠다. 결국 그날 일로 수영을 포기했다는 아쉬움에 그 기간 동안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는 결론까지 덧칠하였다.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이겨내길 바랐지만 아이가 못하겠다고 말하는 순간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 집 아이가 거기까지 가느라 얼마나 애썼을지를 생각해 보니 1년이나 수영을 다닌 내 아이도 기특한데 지나온 길은 보지 못하고 나아갔으면 하는 길만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엄마와 나 사이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잘난 줄 알고 있었던 딸의 서열이 인식되는 순간 부모가 겪는 실망을 고스란히 느꼈고 그런 순간은 상처가 되어서 오랫동안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결과가 과정을 잡아먹는 슬픔. 평가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자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계속 발견해가는 과정에 있다.
1학년 여름 방학, 겨울 방학. 2학년 여름 방학. 아이는 아침 9시에 나와 함께 수영을 다녔고 순간순간 우리는 수영장에서 즐거웠고 수영을 마치고 나와서 종종 들른 맞은편 카페에서도 좋았다. 그 깨알 같은 기쁨은 증발했고 수영에 관한 마지막 결론은 너는 수영은 아닌가 보다였다. 1년이나 수영을 다닌 아이에게 엄마가 요구했던 기준이 너무 높아서 아이의 성취를 실패로 둔갑시켜 버렸다.
앞으로 아이가 받을 무수한 등급. 그 서열 앞에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글로 남긴다.
"수정합니다. 아이는 일 년이나 수영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수영을 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