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와 사랑

상담넷
2023-06-21
조회수 255

똑똑~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박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선생님 안 바빠요?"

"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실은~내가~"하면서 하신 말씀은 팬덤싱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포르테나 라는 4인조 성악 가수팀의 인기투표에 한 표를 던져달라는 부탁이었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회원가입 등 절차가 좀 까다로웠다. 그 까다로운 걸 내가 그 표를 던질 때까지 옆에서 조근조근 가르쳐주신다. 선생님은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얼굴은 발그레하고,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남편 이후로 이렇게 가슴 설렌적이 없었다며 열심히 포르테나가 어떻게 결성된 팀인지, 얼마나 감동있는 노래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신다.

 

사랑은 용기를 준다.


교무실에 가니 박선생님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포르테나의 멤버 중 한 명인 서영택님의 얼굴이 핑크빛을 내며 자리잡고 있다.

"선생님 잘생긴 가수의 얼굴을 보니 제 눈이 다 환해집니다"했더니 선생님의 얼굴빛이 또 빛난다.

"진짜? 나 선생님이 한 말, 팬 카페에 올려야지~그러면 또 댓글들이 쫙~달려요"

"팬들이 엄청 많은가 보네요?"

"네~그럼요. 제 또래 아줌마들도 많답니다"

 

사랑은 서로를 알아본다.

 

선생님은 그 뒤로도 결승전이 있는 주말에 투표를 부탁한다며 학교 온 교직원들에게 "포르테나 우승 축하"라는 글자가 박힌 떡을 돌리셨다. 문자와 메신저로도 메세지가 왔다. 결승이 끝나고 출근했을 때 찾아보니 아쉽게 그 팀이 떨어졌다. 상심이 크셨을거라 생각해서 말도 못붙이고 있는데 의기소침한 모습은 아니셨다. 원없이 최선을 다해 응원을 했으니 괜찮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승을 하면 음반을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거기서 안만들어주면 팬들이 모여서 만들어주면 되지뭐~" 라고 하신다.

덕질이 평생 처음이라는 박선생님은 요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볼 때마다 실실 웃음을 흘리고 다니시는 모습이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무언가에 빠져 있으면 저렇게 사람이 빛나는구나.

 

사랑은 숨길 수 없다.


학교 금연의 날 행사로 인스타그램 사진틀을 들고 금연다짐 사진찍기 행사를 했다. 전시를 끝내고 아이들에게 사진을 찾아가도록 했다. 박선생님도 그날 사진을 찍으셨다. 박선생님이 마침 지나가시길래 사진을 떼서 드렸다.

"선생님은 웃는 모습이 참 예쁘세요. 사진이 너무 잘 나왔어요"

"실은 내가 환하게 잘 못웃었어요. 광대뼈 떄문에"

"왜요? 광대뼈가 어때서요?"

"안그래도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는데 웃으면 광대뼈가 더 도드라져 보여서.."

"네? 그게 선생님 웃을 때 매력인데요?"

"안그래도 이젠 자신있게 웃으려고요. 실은 내가 좋아하는 포르테나 영택님이 자기도 광대뼈가 매력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광대뼈를 매력이라고 말하니까 진짜로 광대뼈가 매력적으로 보이더라구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광대뼈가 닮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컴플렉스라고 생각했던 광대뼈가 다시 생각하니 매력으로 보이네. 참 이상하죠. 광대뼈는 그대로 있는데 생각하는게 바뀌니 웃는 것도 자신있게 할 수 있어요"

 

사랑은 참 힘이 세다.

  

의정부에서 야채가게를 하시는 아는 언니는 조명섭 가수 팬이다. 조명섭 가수를 너무 좋아해서 팬카페에도 가입을 하고 가수가 출연하는 공연에는 여행삼아 쫓아 다닌다. 조명섭 가수는 20대 청년인데 옛창법으로 노래를 불러 아줌마 팬들이 많다. 언니는 어디 갈 때도 팬카페 회원용 민트색 옷을 입고 다닌다. 공연일정이 잡히면 우리에게도 꼭 알려준다. 남편분도 두손두발 다 들었다고 한다. 가수의 노래하는 모습을 편집해서 올려서 돈을 버는 유투버도 되셨다. 벌써 구독자가 몇 천명이나 된다. 조명섭 가수의 팬들은 다 그 언니의 유튜브 구독자들이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 힘이 나나보다. 그리고 그 힘이 돈도 벌게 해 준다. 와우.

 

사랑은 삶의 에너지다.

 

"OO야..뭐하고 있어 아직도 자는 거야? 일어날 시간이야~얼른 일어나~"

왠 남자의 목소리가 큰아이의 방에서 들려온다.

이눔의 자식 새벽까지 남자랑 전화질인가 싶어 들어가 보니 아이는 자고 있고 핸드폰만 울린다. 알고보니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목소리다. 알람소리도 가수 오빠의 목소리로 지정을 해두었다. 카톡을 열어보니 온통 팬카페 회원들과 하는 오픈 채팅방이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달력, 브로마이드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어딜 나가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다니며 노래를 듣는다. 차 안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린다. 하루가 멀다하고 굿즈 택배상자들이 도착한다. 한심하다. 맨날 용돈 부족하다고 하면서 이런데 돈을 쓰는구나. 대놓고 말은 못했다. 중2의 지랄병이 도질까봐서였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무언가에 푹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떤 것을 제대로 알려면 푹 빠지지 않고서는 안된다. 사랑을 실컷 주어본 아이가 사랑받을 줄도 알겠지. 무언가에 푹 빠져 보았으니 미련이 없겠지. 아이의 덕질을 응원하진 못했지만 모른척 하길 잘했다

 

" 나 미쳤나봐"

"응..그래 넌 미쳤어. 하지만 비밀 하나 가르쳐 줄께..

멋진 사람들은 모두 다 미쳤단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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