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조심스레 보건실 문을 열고 박 선생님이 얼굴을 내민다.
"선생님 안 바빠요?"
"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실은~내가~"하면서 하신 말씀은 팬덤싱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포르테나’ 라는 4인조 성악 가수팀의 인기투표에 한 표를 던져달라는 부탁이었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회원가입 등 절차가 좀 까다로웠다. 그 까다로운 걸 내가 그 표를 던질 때까지 옆에서 조곤조곤 가르쳐 준다. 선생님은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안고, 얼굴은 발그레하고,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남편 만난 이후로 이렇게 가슴 설렌 적이 없었다며 열심히 포르테나가 어떻게 결성된 팀인지, 얼마나 감동적인 노래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사랑은 용기를 준다.
교무실에 가니 박 선생님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포르테나의 멤버 중 한 명인 서영택 님의 얼굴이 핑크빛을 내며 자리 잡고 있다.
"선생님 잘생긴 가수의 얼굴을 보니 제 눈이 다 환해집니다" 했더니 선생님의 얼굴빛이 또 빛난다.
"진짜? 나 선생님이 한 말, 팬 카페에 올려야지~그러면 또 댓글들이 쫙~달려요"
"팬들이 엄청 많은가 보네요?"
"네~그럼요. 제 또래 아줌마들도 많답니다"
사랑은 서로를 알아본다.
선생님은 그 뒤로도 결승전이 있는 주말에 투표를 부탁한다며 학교 온 교직원들에게 "포르테나 우승 축하"라는 글자가 박힌 떡을 돌렸다. 문자와 메신저로도 메시지가 왔다. 결승이 끝나고 출근했을 때 찾아보니 아쉽게 그 팀이 떨어졌단다. 상심이 컸을 거로 생각해서 말도 못 붙이고 있는데 의기소침한 모습은 아니었다. 원 없이 최선을 다해 응원했으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우승을 하면 음반을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거기서 안 만들어주면 팬들이 모여서 만들어주면 되지 뭐... 한다.
덕질이 평생 처음이라는 박 선생님은 요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볼 때마다 실실 웃음을 흘리고 다니시는 모습이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무언가에 빠져 있으면 저렇게 사람이 빛나는구나 싶다.
사랑은 숨길 수 없다.
학교 금연의 날 행사로 인스타그램 사진틀을 들고 금연 다짐 사진찍기 행사를 했다. 전시를 끝내고 아이들에게 사진을 찾아가도록 했다. 박 선생님도 그날 사진을 찍으셨다. 박 선생님이 마침 지나가시길래 사진을 떼서 드렸다.
"선생님은 웃는 모습이 참 예쁘세요. 사진이 너무 잘 나왔어요"
"실은 내가 환하게 잘 못 웃었어요. 광대뼈 때문에"
"왜요? 광대뼈가 어때서요?"
"안 그래도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는데 웃으면 광대뼈가 더 도드라져 보여서.."
"네? 그게 선생님 웃을 때 매력인데요?"
"안 그래도 이젠 자신 있게 웃으려고요. 실은 내가 좋아하는 포르테나 영택 님이 자기도 광대뼈가 매력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광대뼈를 매력이라고 말하니까 진짜로 광대뼈가 매력적으로 보이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광대뼈가 닮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광대뼈가 다시 생각하니 매력으로 보이네. 참 이상하죠. 광대뼈는 그대로 있는데 생각하는 게 바뀌니 웃는 것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사랑은 참 힘이 세다.
OO야..뭐 하고 있어 아직도 자는 거야? 일어날 시간이야~얼른 일어나~"
웬 남자의 목소리가 큰아이의 방에서 들려온다.
이 눔의 자식 새벽까지 남자 친구랑 전화질인가 싶어 들어가 보니 아이는 자고 있고 핸드폰만 울린다. 알고 보니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목소리다. 알람 소리도 가수 오빠의 목소리로 지정을 해 두었다. 카톡을 열어보니 온통 팬카페 회원들과 하는 오픈 채팅방이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달력, 브로마이드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어딜 나가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다니며 노래를 듣는다. 차 안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린다. 하루가 멀다고 굿즈 택배 상자들이 도착한다. 한심하다. 맨날 용돈 부족하다고 하면서 이런데 돈을 쓰는구나. 대놓고 말은 못 했다. 중2병이 도질까 봐서였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무언가에 푹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떤 것을 제대로 알려면 푹 빠지지 않고서는 안된다. 사랑을 실컷 주어본 아이가 사랑받을 줄도 알겠지. 무언가에 푹 빠져 보았으니, 미련이 없겠지. 아이의 덕질을 힘껏 응원하진 못했지만 모른 척하길 잘했다.

■ 글. 노워리상담넷 상담위원 이명옥
초,중,고에 다니는 세 딸의 엄마이자 초등학교 보건교사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똑똑~
조심스레 보건실 문을 열고 박 선생님이 얼굴을 내민다.
"선생님 안 바빠요?"
"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실은~내가~"하면서 하신 말씀은 팬덤싱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포르테나’ 라는 4인조 성악 가수팀의 인기투표에 한 표를 던져달라는 부탁이었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회원가입 등 절차가 좀 까다로웠다. 그 까다로운 걸 내가 그 표를 던질 때까지 옆에서 조곤조곤 가르쳐 준다. 선생님은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안고, 얼굴은 발그레하고,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남편 만난 이후로 이렇게 가슴 설렌 적이 없었다며 열심히 포르테나가 어떻게 결성된 팀인지, 얼마나 감동적인 노래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사랑은 용기를 준다.
교무실에 가니 박 선생님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포르테나의 멤버 중 한 명인 서영택 님의 얼굴이 핑크빛을 내며 자리 잡고 있다.
"선생님 잘생긴 가수의 얼굴을 보니 제 눈이 다 환해집니다" 했더니 선생님의 얼굴빛이 또 빛난다.
"진짜? 나 선생님이 한 말, 팬 카페에 올려야지~그러면 또 댓글들이 쫙~달려요"
"팬들이 엄청 많은가 보네요?"
"네~그럼요. 제 또래 아줌마들도 많답니다"
사랑은 서로를 알아본다.
선생님은 그 뒤로도 결승전이 있는 주말에 투표를 부탁한다며 학교 온 교직원들에게 "포르테나 우승 축하"라는 글자가 박힌 떡을 돌렸다. 문자와 메신저로도 메시지가 왔다. 결승이 끝나고 출근했을 때 찾아보니 아쉽게 그 팀이 떨어졌단다. 상심이 컸을 거로 생각해서 말도 못 붙이고 있는데 의기소침한 모습은 아니었다. 원 없이 최선을 다해 응원했으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우승을 하면 음반을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거기서 안 만들어주면 팬들이 모여서 만들어주면 되지 뭐... 한다.
덕질이 평생 처음이라는 박 선생님은 요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볼 때마다 실실 웃음을 흘리고 다니시는 모습이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무언가에 빠져 있으면 저렇게 사람이 빛나는구나 싶다.
사랑은 숨길 수 없다.
학교 금연의 날 행사로 인스타그램 사진틀을 들고 금연 다짐 사진찍기 행사를 했다. 전시를 끝내고 아이들에게 사진을 찾아가도록 했다. 박 선생님도 그날 사진을 찍으셨다. 박 선생님이 마침 지나가시길래 사진을 떼서 드렸다.
"선생님은 웃는 모습이 참 예쁘세요. 사진이 너무 잘 나왔어요"
"실은 내가 환하게 잘 못 웃었어요. 광대뼈 때문에"
"왜요? 광대뼈가 어때서요?"
"안 그래도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는데 웃으면 광대뼈가 더 도드라져 보여서.."
"네? 그게 선생님 웃을 때 매력인데요?"
"안 그래도 이젠 자신 있게 웃으려고요. 실은 내가 좋아하는 포르테나 영택 님이 자기도 광대뼈가 매력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광대뼈를 매력이라고 말하니까 진짜로 광대뼈가 매력적으로 보이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광대뼈가 닮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광대뼈가 다시 생각하니 매력으로 보이네. 참 이상하죠. 광대뼈는 그대로 있는데 생각하는 게 바뀌니 웃는 것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사랑은 참 힘이 세다.
OO야..뭐 하고 있어 아직도 자는 거야? 일어날 시간이야~얼른 일어나~"
웬 남자의 목소리가 큰아이의 방에서 들려온다.
이 눔의 자식 새벽까지 남자 친구랑 전화질인가 싶어 들어가 보니 아이는 자고 있고 핸드폰만 울린다. 알고 보니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목소리다. 알람 소리도 가수 오빠의 목소리로 지정을 해 두었다. 카톡을 열어보니 온통 팬카페 회원들과 하는 오픈 채팅방이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달력, 브로마이드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어딜 나가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다니며 노래를 듣는다. 차 안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린다. 하루가 멀다고 굿즈 택배 상자들이 도착한다. 한심하다. 맨날 용돈 부족하다고 하면서 이런데 돈을 쓰는구나. 대놓고 말은 못 했다. 중2병이 도질까 봐서였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무언가에 푹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떤 것을 제대로 알려면 푹 빠지지 않고서는 안된다. 사랑을 실컷 주어본 아이가 사랑받을 줄도 알겠지. 무언가에 푹 빠져 보았으니, 미련이 없겠지. 아이의 덕질을 힘껏 응원하진 못했지만 모른 척하길 잘했다.
■ 글. 노워리상담넷 상담위원 이명옥
초,중,고에 다니는 세 딸의 엄마이자 초등학교 보건교사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