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입구 신축건물에 편의점이 생겼다. 집과는 5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주말 스태프 구인 공고를 보고 일해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포스기(계산하는 기계)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계산 실수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으나 ‘주말? 이른 아침부터? 시간대가 괜찮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행히 포스기 숙지는 하루면 충분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고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주말이라 오전 시간대에 자녀와 같이 오는 부모들이 물건을 고르면서 대화하는 내용이 귀에 들어오곤 했다. 짧은 시간 대화하는 모습만으로 관계가 어떻다는 것을 모두 알 수 없지만, 조금은 짐작이 가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질 때도 있고, 순간이지만 안타까움이 들 때도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부모와 술을 같이 고르는 청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자녀와 그 자녀를 대하는 부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땠지? 나도 그랬지….’ 때로는 ‘나도 저렇게 아이를 대했으면 더 좋았겠다…. 부럽다.’ ‘저렇게 하면 관계가 더 나빠질 텐데.’ 등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날그날 마음이 가는 에피소드를 적고 내 생각을 첨부했다. 그중 하나의 에피소드다.
초등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가 음료수를 계산하고 출입문을 나설 때, 나는 인사를 했고, 아이에게도 “잘 가요”라고 했다. 아이 엄마가 “인사하시잖아! 너도 인사해야지” 라며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거칠어서였을까 내가 오히려 머쓱하였다. 아이는 몸을 살짝 틀어 고개를 끄덕하였다. 엄마는 “그게 인사야? 제대로 해야지”라고 했고, 아이는 입을 열어 “안녕히 계세요”라고 했지만 엄마 마음에는 들지 않았는지 다시 하라고 했다. 아이는 다시 인사했으나 나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다음부터는 부모와 같이 오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문을 나가는 모자의 모습을 보며 나의 예전 모습이 겹쳤다. 큰아이가 7살쯤 되었을 때였다. 아파트 내에서 이웃분들이나 경비원분과 마주치면 나는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나는 본디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내향적 성향이 더 강한 아이였기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였고,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내가 본을 보이면 아이도 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의 기준에서 ‘지금쯤은 해야 하지 않나, 마냥 기다리기보다 인사를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생각이 그렇게 형성되자 아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아는 어른을 만나면 인사하는 거야, 알았지?” 그러나 아이는 금세 바뀌지 않았다.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나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표정을 굳혀 ‘엄마, 지금 속상하고, 인사하지 않는 네가 창피해’라는 느낌으로 아이를 대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성인이 된 아들이지만 그때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그리고 나의 언행이 부끄러워졌다.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몰랐던 나의 무지가 부끄럽고, 그런 엄마의 모습에 힘들었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보다는 나의 체면 그러니까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엄마가 먼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이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가 왜 인사를 하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내향적이어서라고 이해했고, 7살인데 지금쯤은 해야 하는 게 맞다는 나의 잣대로 아이를 대했다. 그 기준에 아이가 따라주지 않으면 나는 속상해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답답해했다. 그러한 내 생각과 감정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 순간 아이는 ‘예의 없는 사람’,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사람’, 나아가 ‘엄마를 속상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어떠한 행동과 말을 할 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지 궁금해하고, 내 기준에서 이해가 안 된다고 ‘틀렸다. 옳지 않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왜 상대방을 이해하기 힘든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인지하게 되었을 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던 거 같다. 변화할 기회가 왔다는 시작!!
깨닫게 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잠깐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부모-자녀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나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었다.

■ 글. 노워리상담넷 상담위원 안연비
교육 걱정 없는 부모 그리고 행복한 아이들의 삶을 꿈꾸는 것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3년부터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함께 하고 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쭉, 더 좋은 분들과 많이 만나기를 희망한다. 저와 함께 하시겠어요?
마을 입구 신축건물에 편의점이 생겼다. 집과는 5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주말 스태프 구인 공고를 보고 일해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포스기(계산하는 기계)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계산 실수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으나 ‘주말? 이른 아침부터? 시간대가 괜찮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행히 포스기 숙지는 하루면 충분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고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주말이라 오전 시간대에 자녀와 같이 오는 부모들이 물건을 고르면서 대화하는 내용이 귀에 들어오곤 했다. 짧은 시간 대화하는 모습만으로 관계가 어떻다는 것을 모두 알 수 없지만, 조금은 짐작이 가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질 때도 있고, 순간이지만 안타까움이 들 때도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부모와 술을 같이 고르는 청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자녀와 그 자녀를 대하는 부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땠지? 나도 그랬지….’ 때로는 ‘나도 저렇게 아이를 대했으면 더 좋았겠다…. 부럽다.’ ‘저렇게 하면 관계가 더 나빠질 텐데.’ 등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날그날 마음이 가는 에피소드를 적고 내 생각을 첨부했다. 그중 하나의 에피소드다.
초등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가 음료수를 계산하고 출입문을 나설 때, 나는 인사를 했고, 아이에게도 “잘 가요”라고 했다. 아이 엄마가 “인사하시잖아! 너도 인사해야지” 라며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거칠어서였을까 내가 오히려 머쓱하였다. 아이는 몸을 살짝 틀어 고개를 끄덕하였다. 엄마는 “그게 인사야? 제대로 해야지”라고 했고, 아이는 입을 열어 “안녕히 계세요”라고 했지만 엄마 마음에는 들지 않았는지 다시 하라고 했다. 아이는 다시 인사했으나 나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다음부터는 부모와 같이 오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문을 나가는 모자의 모습을 보며 나의 예전 모습이 겹쳤다. 큰아이가 7살쯤 되었을 때였다. 아파트 내에서 이웃분들이나 경비원분과 마주치면 나는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나는 본디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내향적 성향이 더 강한 아이였기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였고,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내가 본을 보이면 아이도 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의 기준에서 ‘지금쯤은 해야 하지 않나, 마냥 기다리기보다 인사를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생각이 그렇게 형성되자 아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아는 어른을 만나면 인사하는 거야, 알았지?” 그러나 아이는 금세 바뀌지 않았다.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나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표정을 굳혀 ‘엄마, 지금 속상하고, 인사하지 않는 네가 창피해’라는 느낌으로 아이를 대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성인이 된 아들이지만 그때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그리고 나의 언행이 부끄러워졌다.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몰랐던 나의 무지가 부끄럽고, 그런 엄마의 모습에 힘들었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보다는 나의 체면 그러니까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엄마가 먼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이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가 왜 인사를 하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내향적이어서라고 이해했고, 7살인데 지금쯤은 해야 하는 게 맞다는 나의 잣대로 아이를 대했다. 그 기준에 아이가 따라주지 않으면 나는 속상해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답답해했다. 그러한 내 생각과 감정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 순간 아이는 ‘예의 없는 사람’,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사람’, 나아가 ‘엄마를 속상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어떠한 행동과 말을 할 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지 궁금해하고, 내 기준에서 이해가 안 된다고 ‘틀렸다. 옳지 않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왜 상대방을 이해하기 힘든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인지하게 되었을 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던 거 같다. 변화할 기회가 왔다는 시작!!
깨닫게 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잠깐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부모-자녀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나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었다.
■ 글. 노워리상담넷 상담위원 안연비
교육 걱정 없는 부모 그리고 행복한 아이들의 삶을 꿈꾸는 것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3년부터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함께 하고 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쭉, 더 좋은 분들과 많이 만나기를 희망한다. 저와 함께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