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열풍 속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시대예보:호명사회>를 읽고

상담넷
2024-12-03
조회수 81

단정하게 묶은 긴 머리가 인상적인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의 책을 저는 좋아합니다. 분석은 냉철하고, 독자에게 설명하는 방식은 다정하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회를 들여다보고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지 흐름을 보여주는 그의 글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나침반이 되어 줍니다. 또한, 마치 옆에서 말해주는 듯한 다정한 문체는 '이 사람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안겨줍니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시대, 자녀의 미래 걱정으로 불안한 분들께 그의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송길영의 책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북스톤)>를 일전에 칼럼-Don't just do it-에서 소개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시대예보:호명사회(교보문고)> 역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 교육과 관련하여, 의대 열풍 속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어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이 책을 기반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초등학생들의 희망 직업을 보면 시대상을 알 수 있습니다. 10년 전 학교에서 진로 교육을 할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는 막 '진로 교육법'이 시행되던 2015년쯤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희망 직업을 물으면 연예인, 운동선수, 요리사, 유튜버, 선생님, 공무원이 상위권에 있었습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기가 많습니다. 요리사는 TV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열풍으로 인기가 많았는데 그 열기가 수그러들었다가 요즘 다시 <흑백 요리사> 덕에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했던 건 유튜버 하겠다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소수지만 유튜버로 돈을 버는 친구가 실제로 있었고 그 친구가 '넘사벽'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를 하고 있으니 놀라운 것도 없지만 당시에는 그것도 직업이 될 수 있는지 하고 의문을 품을 정도로 직업으로서 유튜버는 생소했습니다. 마치 게임을 좋아해서 프로게이머 되겠다는 것처럼 현실성 없는 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공무원(선생님 포함)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하고 질문하면 아이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무원이었습니다. 자녀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바라는 어른의 바람이 투영되었을 겁니다. 그렇게 인기 많은 공무원이기에 공무원이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서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고, 그래서 더 선망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요즘, 아이들은 어떤 직업을 원할까요. 현장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어 '2023년 교육부 현황조사' 자료를 보니 운동선수, 의사, 교사가 1,2,3위이더군요. 꼬박꼬박 10위 권 안에 들었던 공무원의 인기는 크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반면, 2025 입시에서 의대 정원이 늘면서 의사가 될 기회가 확대되자 의대 열풍이 일고 있습니다. 의대에 가기 위해 유치원생까지도 의대 준비반에 들어갈 정도로 의사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이 많아 열풍을 넘어 광풍으로 느껴집니다. 얼마 전 MBC 100분 토론에서 '의대 열풍'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모 공대 교수는 지금 과학계의 어려움을 논하며, 가까운 미래에 공대가 상대적으로 인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90년대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의대 보다 공대를 가는 시대였는데, 이제 다시 그런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거죠. 저도 크게 공감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희소성이 있는 것이 더 값어치가 높은 게 이치인데, 의대 정원이 늘어 의사의 수가 늘어나면 앞으로 의사의 값어치는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의대 교육과 전문 수련 과정을 모두 다 하면 의사가 되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 15년까지도 걸립니다. 물론 의대 교육만 마치고 빠른 시간 안에 '의사'라는 타이틀만 딸 수도 있지만 경쟁력에서 뒤처질 것 입니다. 지금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최소 10~15년 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데 과연 10년 후에도 의사가 인기 직업으로 남아있을까 예측해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의대 열풍'에 일침을 가하며 "세상이 바뀐 줄 모르는 분들은 아이를 계속 의대에 보내십시오.'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의사는 포화 상태입니다. 주요 길목, 사거리 모퉁이에는 병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습니다. 경쟁하듯 번쩍이는 간판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홍보하고, 규모를 키우고, 시설을 최고급화 하는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동원하지 않으면 대학 타이틀과 실력만으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며 병원을 잘 운영해 나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미 병원과 의사들은 많고, 경쟁이 치열하니까요. 그런데 왜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나요. 필수 의료의 의사가 부족한 것은 그 일이 힘들고 고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위험 부담도 크고 책임감도 커지기에 더 그렇습니다.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새우잠을 자던 응급의료센터 이국종 의대 교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 의대를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이런 면까지 두루 고심하고, 자신의 기질과 성격, 가치관과 사명에 맞는 직업으로 의사를 택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10년 후 의사로서 맞이한 직업 세계의 고된 현실에 또다시 진로 고민을 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송길영은 <호명사회>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안정적인 삶을 찾고자 하는 개인들은 어느덧 같은 목표를 지향하며 경쟁의 인플레이션을 겪는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롤모델은 스포츠 스타와 예능인을 거쳐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를 지나 이제 의사로 결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안정적이면서 금전적 보상이 높은 직업,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직업이기에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단일해지고 우리 시대의 지향점이 모두 같은 기준으로, 한곳으로 몰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얻기 위해 쟁투하며 경쟁이 격해집니다. 동일한 트랙의 선착순 경기로 내몰린 사람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름길을 선택해서라도 이기라고 권하게 됩니다. 잠재적 경쟁자보다 앞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정원이 한정된 자격을 얻기 위한 상대평가에서의 우위를 남들보다 미리 준비하는 '선행학습'으로 획득하려 합니다. 실수와 불운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이 의도치 않게 무한 확장되면서 실제 삶이 제거되고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효율만 극대화된 무력한 삶이 이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의 현실이 아닌, 아이들이 살아갈 10년 후의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송길영은 이미 '호명사회'가 도래했음을 주장합니다. '호명'은 '이름을 부른다'는 뜻입니다. 소속과 직함을 버리고 자신의 업에 이름을 걸 수 있는 홀로선 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연대하는 사회,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고 온전히 자신이 한 일에 보상을 받는 새로운 공정한 시대가 온다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김OO 부장'이나 '의사 박OO 선생님'이 아니라 'OO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정OO'로 불리며, 같은 '호오(好惡, 좋음과 싫음)'를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는 사회가 호명사회입니다. 개인들은 모두가 한 방향으로 1등이 되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강강술래처럼 360도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갑니다. 목표가 다르고 전문 영역이 다른 이들이 '호오'를 중심으로 연대하는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하루의 시험을 잘 본 이가 평생의 혜택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거듭난 이가 스스로 성장하며 그 날카로움이 주머니를 뚫고 나올 때까지 모두가 기다려주고 지켜보는 방식으로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고 송길영은 말합니다.

 

'호명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자신의 '호오'를 분명히 아는 자아성찰력, 그리고 타인과 연대하는 능력입니다. 진로교육 시간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내가 보는 나, 남이 보는 나, 그리고 검사를 통해 드러난 나 등 다각적으로 자신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가장 처음에 하는, 아이스브레이킹 처럼 쉽고 간단한 활동인데도 아이들은 선뜻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걸 어려워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뿐만이 아닐 겁니다. 이 글을 읽는 어른들도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을 각각 10가지 정도 적어보세요. 쉽지 않을 겁니다. 10개를 다 채우고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이 보일 겁니다. 그게 나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그렇게 자기 이해부터 시작해서 직업 세계를 이해하고 나와 직업 세계를 연결 짓는 활동으로 진로 교육은 이어집니다. 진로 교육전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협업'입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작업 과정에서 웃고 즐기며 그날의 협동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은 꾸려집니다. 때로는 수업 시간이 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함께하기에 즐거운 수업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수업을 고안해 내는 것도 진로교육의 한 축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호오'를 분명하게 알고 타인과 연대할 수 있도록,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을 두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선발' 당하기 위한 노력,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선택지를 늘리는 노력이 아니라, '축적'을 추구하며 자신이 스스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머리로 시뮬레이션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하며 경험과 지식을 쌓아나가야 합니다. 송길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점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사람들이 주목받는 쪽으로 사회는 변화할 것이라고.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대등한 관계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더불어 스스로 자립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획득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고. 아이들의 호오를 지켜보며, 호오를 알아봐 주고, 아이들 스스로 축적의 시간을 쌓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타인과 연대하는 힘이 생길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지켜보고 격려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미래의 아이들이 '이 꿈이 내 꿈이 아니었다'라는 말을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b140 mind


■ 글. 노워리상담넷 상담위원 김선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면서 교육의 관점이 '내 아이'에서 '우리 아이들'로 확장되었습니다. 미래를 살아 갈, 그래서 현재 고군분투 하고 있는 모든 아이들의 행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교육과 심리상담을 하고 있고, 지금은 잠시 병원에서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있습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도 비일상처럼 특별하게 여기고, 비일상도 일상처럼 평온하게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저의 아이디 b140 mind에 담긴 의미입니다.


사단법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ㅣ사업자번호 356-82-00194ㅣ공동대표 신소영 나성훈

ㅣ이사장 송인수 ㅣ (04382)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62길 23 유진빌딩 4층

ㅣ문의 02-797-4044 noworry@noworry.kr개인정보처리방침

호스팅제공자 : (주)누구나데이터 | 개인정보보호 관리 책임자 : 김용명 | 팩스 : 02-797-4484

Copyright 사단법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All Right Reserved.


사단법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업자번호 356-82-00194 ㅣ 대표 신소영, 나성훈

호스팅제공자 : (주)누구나데이터 | 

개인정보보호 관리 책임자 : 김용명 

| 팩스 : 027974484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