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바꾼다는 건 끈기가 없어서 일까

상담넷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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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시작될 무렵, 첫 째 아이의 아르바이트 경험담을 칼럼에 올렸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언니, 오빠들이 비춰 준 긍정의 거울 덕분에 자존감을 회복한, 이제 막 성인이 된  우리 집 큰 딸 이야기였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난생 처음 시작한 첫 아르바이트에서 마음고생을 하던 아이는,  새로운 일 자리로 옮겨 다행히 좋은 동료들을 만났어요. 자기는 변한 게 없는데, 같은 행동에도 "괜찮다", "잘한다" 말해주는 동료들을 보고 ‘내가 잘못 된 사람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으면서 마음이 회복되었던 이야기였어요. (관련칼럼: 어른은 아이의 미용실 거울이 되어야. )


  계절이 바뀌고 이제 겨울의 초입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알바 생활도 어느덧 1년이 되어 갑니다. 그렇게 좋은 언니, 오빠들이 있는 일터였지만 지금은 그 곳에서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3 겨울방학 때, 집 근처 카페에서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마감 알바를 시작했던 아이는, 알바의 이력이 생겨 좀 더 나은 데로, 좀 더 자기가 좋아하는 쪽으로 옮겨 갔어요. 그 과정에서 아이가 옷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대기업 의류 판매 매장까지 진출(?)하게 되었어요. 알바이긴 하지만 큰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워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잘 한 선택이라고 지지해 주었죠. 그런데 그 곳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만두고 다른 데로 옮기겠다는 말을 듣고 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어요. 

 

지난 11개월 동안 아이는 일을 시작했다 그만두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했어요. 불합리한 처사가 있을 때도 있었고, 일하는 곳의 환경 상 신체적으로 트러블이 생겨서 힘들었던 곳도 있었어요. 보기엔 멋져 보이던 일이 막상 해보니 의미 없이 힘든 일 이었던 곳도 있고, 스타일리쉬한 매장이 마음에 들어서 갔는데 주인이 어려워서 괜히 마음이 불편한 곳도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여러 날을 일하는 곳에 있다가 좀 쉬고 싶다고 일을 그만두기도 하고, 그만 두었다가는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다고 다시 일을 찾아 나가고..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좀 더 끈기 있게 한 곳에서 오래 일 해주었으면, 그리고 선택을 할 때는 신중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대기업 의류매장을 금방 그만 두겠다고 했을 때는 '한 번 쯤은 브레이크를 걸고 아이한테 알려줄 건 알려줘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올라왔어요. "네가 왜 그만두려고 하는지는 알지만, 그래도 그런 데서 일을 배우는 게 훗날 너의 이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력들이 짧게 남으면 나중에 중요한 순간에 짧은 이력이 너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등등 성실성을 강조하는 말이었지만, 결국은 오래 버티라고 설득하는 말이었죠.  "결정은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어요. 그래도 아이가 제 얘기를 듣고 깨달음이 와서 좀 더 버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결국 아이는 자기가 눈여겨 본, 다른 의류매장에 마음이 끌려서 사표를 썼습니다. 아이도 고민을 많이 했겠지만, 그래도 내 말이 안 먹혔구나 생각하니 좀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씨의 <당신이 옳다>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CPR(응급심폐소생술)과 같은 지지, 위로, 공감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책이죠. 이 책 안에 딱 제 아이와 같은 사례가  그대로 나와 있더라구요. 정혜신씨는 이런 말을 합니다. "계속 바꾼다는 건 흔히 생각하듯 게으르거나 끈기가 없어서만은 아니다. 자기를 찾기 위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고민 속에는 '왜 나는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오래 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늘 함께 들어 있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당사자는 그런 자신에 대해 남보다 더 많이 자책하며 생각한다.", "진로는 몇 회까지 바꿀 수 있다는 법조항이라도 있는가. 없다. 직업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열 번, 스무 번 계속 바꾼다고 안 될 이유가 없다."(232p)


 그러고 보니 아이가 일을 그만 두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만두는걸 아쉬워했던 그 대기업 의류브랜드 매장은 근무일수가 적정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지만, 하루 종일 옷을 개거나, 계산을 하거나, 재고를 정리하는 일로 쉴 틈이 없다는 게 힘든 점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느 날 응원 차 매장에 들렀을 때, 흐트러진 매대의 옷을 정리하다가 계산대에 온 손님 응대하러 달려가고, 그 후로 긴 줄로 서 있는 손님들 계산해 주느라 짬을 낼 수 없는 딸과 멀리서 눈빛만 교환하고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 걸 보고서도 "그래도 버텨야 한다."라는 말을 했던 게, 엄마인 저였다는 점이 너무 미안해졌습니다.


  제가 즐겨보는 토크 프로그램에 한 여대생이 출연했습니다. 학창시절 강당에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친구가 찍어서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진 친구였어요.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임원도 하면서, 성격도 좋고 춤도 잘 추고 인기도 좋았던 이 학생은 대학에 입학해서도 성실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받으면서 유쾌하게 잘 살고 있더라구요. 입담이 좋아서 보기만 해도 유쾌해지는 친구였습니다. 수순대로라면 이 친구도 사회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그걸 위해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취업, 사회생활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로망을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나왔어요. 이렇게 훌륭하게 자기 인생을 잘 살고 있고 성실한 학생도,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리고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보상과 대우를 받고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막연하더라구요. 어리니까 그럴 수밖에 없고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서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제 딸아이 또래이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그 아이에서 제 아이로 생각이 돌아왔습니다. ‘상대적으로 내 아이는 많은 경험을 하고 있는 거구나.’,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기에게 무엇이 맞고 무엇이 맞지 않는지를 찾아가고 있구나.’, 그러면서 ‘자기만의 좋고 싫음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거구나!! 정혜신씨가 얘기한 것, 계속 바꾸는 아이는 자기 것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한 말. 그러고 보니  아이는 단순히 일을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고가 아니라. 꾸준히 '진화'를 해온 겁니다. 찰스 다윈은 어떤 생물이 환경에 맞춰 서서히 변화해 가는 것을 '진화'라고 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10개월 만에 지금 자리까지 온 게 진화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10개월만에도 이렇게 진화해왔는데 앞으로는 어떨지 더 기대가 되고, 사실 잘 모르지만 얘는 뭔가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전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가 그 대기업 의류매장을 그만두고 현재 일하고 있는 빈티지 의류매장으로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쌓여 온 알바 내공에 더해, 아이의 감각을 인정한 사장님이 가게 하나를 전적으로 아이에게 맡기다 시피하고 있어요. 옷을 디스플레이하고, 스타일링 해서 SNS에 올리고, 손님들과 1:1로 상대하면서 자신의 역량대로 가게 매출이 나오는 현재의 일에서 아이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지금 그 곳에서 실현하며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부딪혀 배우면서 빠른 변화로 자기의 길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계속 진화하는 과정중에 있는 것이죠. 그 진화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저는 가슴이 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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