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대화로 아이들과 공부한 지 어느새 반 년이 훌쩍 지났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성장기의 아이들이라 그새 키가 훌쩍 커버리는 것 처럼, 상당한 변화를 보인 아이들도 있다. 또 나로인한 변화가 있나 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다시 학습 의욕이 떨어지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 반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지주의인 거야?”
“네~ 당연하죠!!”
항상 입이 한 주먹 나와서 마지못해 앉아 있다가 가던 A(이름이 민주와 비슷한)의 얼굴이 환해지는 순간이었다. 많은 단어를 외우는 것도 힘든데 틀린 단어를 열 번 씩 쓰라는 학원 규칙을 아이들은 질색 팔색 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친구 찬스, 선생님 찬스를 허용했는데, 이 날은 '친구 찬스를 몇 개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로 논란이 일었다. 원칙파와 융통성파의 중간에서 A의 의견을 물었더니 시크하게 “5개!” 라며 통 큰 모습을 보였다. '두 개 허용해도 되냐 찬스는 한 개 까지지' 하며 조마조마한 양심 싸움을 하던 아이들이 크게 웃으며 A를 외친 이후로 A와 아이들은 부쩍 가까워졌다. 친구 찬스가 더 허용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어쩔 줄 몰라 하는 과잉 동작과 A의 담대한 상상력에 후련함을 느낀 것 같다.
그날 이후 A는 조잘 조잘 말도 늘어나고, 그토록 싫어하던 문법을 제대로 풀기 시작했다. (물론 양은 한 장으로 시작해서 이제 한 장 반을 허락해 주는 정도이다.) 그리고 본인이 잘하는 단어 암기에는 자부심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A는 웃으면서 학원에 들어온다. A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아이여서 학습 동기에도 교우관계가 미치는 영향이 큰 아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너는 원칙이 중요하구나.”
“시험인데 찬스를 쓰는 게 말이 되나요?” 라고 맞는 말을 던져서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0.5도는 낮아졌을 때, 이 발언 당사자인 남학생 B에게 나는 이렇게 물어봤다.
“원칙을 지키는 건 정말 중요하지.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지금 효율성과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은 거야.”
남학생 B는,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살 차이나는 영재형 동생에게 언제 추월 당할지도 모른다는 서사가 있었다. 원리원칙대로 글씨도 또박 또박, 숙제도 꼬박 꼬박 지키지만 설렁설렁 하는 동생이 더 잘해버리니 어쩌면 조금 억울한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쉬운 길로 가려 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B가 참 좋아 보였다.
“B는 나중에 권력을 다루는 일을 하면 좋겠다. 힘을 행사하는 자리는 원칙의 중요함을 아는 사람이 꼭 필요 하잖아.”
이후로 B는 그동안 힘들다고 주2회 나오던 학원에 토요일 포함 주3회를 나오는 열정을 보여주는 알흠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A와 B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A의 엄마와 B의 엄마는 아이들이 힘들다고 할 때 학원을 쉬게 해주었다. B가 더 고학년임에도 불구하고 B도 이전에 학원을 쉬었다 다시 나온 거라 한다. 이들의 부모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쉬게 하기도 했지만, 쉬는 동안 아이들 마음을 살살 녹여서 이번에는 조금 더해보면 어떨까 하고 밀당을 계속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폭력 대화 한 숟가락으로 자신의 욕구를 알게 하니, 아이들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학습 의욕의 상승 하락 곡선을 그리는 아이들도 있다. 조금 진득 해졌나 싶으면 다시 엎드려 있고, 조금 집중하게 되었나 싶으면 다시 졸고 있기도 하다. 나는 내 욕구를 들여다 보았다. ‘나의 효능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가? 그래서 이 아이들을 슬그머니 내 효용감의 도구로 보고 있나?’ 하는.
아이들과 친근해지면서 아이들이 내 맘 같지 않게 행동하면, ‘네가 나 한테 이러기냐? ‘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처음에 아이들을 대하던 존중과 사려 깊음은 그들이 낯설기 때문에 훨씬 잘 작동되었던 것 같다. 친해질수록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의무를 요구하고 있었다. 낯설 때의 조심스러움과 예의 바름은 이들과 친해질수록 내 멋대로 나 편 할대로 변질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아이들을 낯설게 보기로 했다. 내 맘대로 안되어 냉정함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성장해서 조금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어른이 되고 싶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나와 집에서 자연인으로서의 내가 다른 모습이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 아이들도 학원 아이들 대하듯 하니, 훨씬 사이가 좋아졌다. 비폭력 대화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빼먹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공허한 말장난에 그칠 것이다. ‘엄마는 말만 잘해!’ 라고 말했던 아들의 말 뜻이 이제 억울하게 들리지 않는다. “너는 솔직함이 중요한 거니?”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비폭력 대화로 아이들과 공부한 지 어느새 반 년이 훌쩍 지났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성장기의 아이들이라 그새 키가 훌쩍 커버리는 것 처럼, 상당한 변화를 보인 아이들도 있다. 또 나로인한 변화가 있나 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다시 학습 의욕이 떨어지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 반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지주의인 거야?”
“네~ 당연하죠!!”
항상 입이 한 주먹 나와서 마지못해 앉아 있다가 가던 A(이름이 민주와 비슷한)의 얼굴이 환해지는 순간이었다. 많은 단어를 외우는 것도 힘든데 틀린 단어를 열 번 씩 쓰라는 학원 규칙을 아이들은 질색 팔색 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친구 찬스, 선생님 찬스를 허용했는데, 이 날은 '친구 찬스를 몇 개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로 논란이 일었다. 원칙파와 융통성파의 중간에서 A의 의견을 물었더니 시크하게 “5개!” 라며 통 큰 모습을 보였다. '두 개 허용해도 되냐 찬스는 한 개 까지지' 하며 조마조마한 양심 싸움을 하던 아이들이 크게 웃으며 A를 외친 이후로 A와 아이들은 부쩍 가까워졌다. 친구 찬스가 더 허용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어쩔 줄 몰라 하는 과잉 동작과 A의 담대한 상상력에 후련함을 느낀 것 같다.
그날 이후 A는 조잘 조잘 말도 늘어나고, 그토록 싫어하던 문법을 제대로 풀기 시작했다. (물론 양은 한 장으로 시작해서 이제 한 장 반을 허락해 주는 정도이다.) 그리고 본인이 잘하는 단어 암기에는 자부심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A는 웃으면서 학원에 들어온다. A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아이여서 학습 동기에도 교우관계가 미치는 영향이 큰 아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너는 원칙이 중요하구나.”
“시험인데 찬스를 쓰는 게 말이 되나요?” 라고 맞는 말을 던져서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0.5도는 낮아졌을 때, 이 발언 당사자인 남학생 B에게 나는 이렇게 물어봤다.
“원칙을 지키는 건 정말 중요하지.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지금 효율성과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은 거야.”
남학생 B는,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살 차이나는 영재형 동생에게 언제 추월 당할지도 모른다는 서사가 있었다. 원리원칙대로 글씨도 또박 또박, 숙제도 꼬박 꼬박 지키지만 설렁설렁 하는 동생이 더 잘해버리니 어쩌면 조금 억울한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쉬운 길로 가려 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B가 참 좋아 보였다.
“B는 나중에 권력을 다루는 일을 하면 좋겠다. 힘을 행사하는 자리는 원칙의 중요함을 아는 사람이 꼭 필요 하잖아.”
이후로 B는 그동안 힘들다고 주2회 나오던 학원에 토요일 포함 주3회를 나오는 열정을 보여주는 알흠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A와 B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A의 엄마와 B의 엄마는 아이들이 힘들다고 할 때 학원을 쉬게 해주었다. B가 더 고학년임에도 불구하고 B도 이전에 학원을 쉬었다 다시 나온 거라 한다. 이들의 부모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쉬게 하기도 했지만, 쉬는 동안 아이들 마음을 살살 녹여서 이번에는 조금 더해보면 어떨까 하고 밀당을 계속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폭력 대화 한 숟가락으로 자신의 욕구를 알게 하니, 아이들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학습 의욕의 상승 하락 곡선을 그리는 아이들도 있다. 조금 진득 해졌나 싶으면 다시 엎드려 있고, 조금 집중하게 되었나 싶으면 다시 졸고 있기도 하다. 나는 내 욕구를 들여다 보았다. ‘나의 효능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가? 그래서 이 아이들을 슬그머니 내 효용감의 도구로 보고 있나?’ 하는.
아이들과 친근해지면서 아이들이 내 맘 같지 않게 행동하면, ‘네가 나 한테 이러기냐? ‘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처음에 아이들을 대하던 존중과 사려 깊음은 그들이 낯설기 때문에 훨씬 잘 작동되었던 것 같다. 친해질수록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의무를 요구하고 있었다. 낯설 때의 조심스러움과 예의 바름은 이들과 친해질수록 내 멋대로 나 편 할대로 변질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아이들을 낯설게 보기로 했다. 내 맘대로 안되어 냉정함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성장해서 조금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어른이 되고 싶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나와 집에서 자연인으로서의 내가 다른 모습이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 아이들도 학원 아이들 대하듯 하니, 훨씬 사이가 좋아졌다. 비폭력 대화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빼먹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공허한 말장난에 그칠 것이다. ‘엄마는 말만 잘해!’ 라고 말했던 아들의 말 뜻이 이제 억울하게 들리지 않는다. “너는 솔직함이 중요한 거니?”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