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및 심리 상담Re : 고1여자아이가 고깃집 알바를 한대요

Q. 인문계 고1인 자녀가 1학기 중간과 기말을 7, 8등급을 받더니 공부는 자기 길이 아니라고 책을 덮더니 집에 오면, 잠만 자고 억지로 책상에 앉히면 멍하니 거울만 들여다봐요.

고3때 미용기술배우는 위탁교육을 나갈 거라고 고1, 2는 알바를 하겠대요. 공부를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게 너무 미워죽겠어요. 수학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창턱에 발 걸고 협박하더라구요. 고1 수학문제집을 들여다보니 저도 못 풀 정도로 어려운 문제들만 있더라구요.

다른 학생들은 대체 어떻게 저런 문제들을 풀어내는지 이해가 안돼요.

 

공부는 안하면서 유튜브에 나오는 맛집은 다 찾아다니고 신기한 음식은 다 사먹고 돌아다녀서 얄미워서 용돈도 안주니 지가 벌어서 사먹겠대요. 알바하겠다고 보건소에 보건증 발급받으러간다는데 죽여버리고 싶네요. 고기기름에 허벅지 데면 어쩌나, 미친 손님이 진상부리면 어쩌나, 노인네들이 술 시키면서 공부하기 싫어서 돈벌러 나왔다고 희롱할게 뻔한데 알려줘도 개의치않네요. 어떻게 해야 해요? 미치겠어요. 학원다니라고 알아봐줬더니 자기한테 돈 낭비 하지말래요. 자기는 20살 되면 미용실 차릴 가게 구해야 한다고 알바해서 보증금 저축할거래요.



A. 안녕하세요? 고1 여학생의 고깃집 아르바이트에 대한 문의 글을 주셨습니다. 어머님의 걱정과 실망감이 느껴졌습니다. 귀하게 키운 아이가 일찍부터 사서 고생을 한다고 하니 마음이 힘드시지요?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을 요약하면,
     첫 번째, 공부를 안 해서 대학 진학을 못 하게 될 것 같다.
     두 번째,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하면서 다치거나 험한 일을 당할 수 있다.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먼저, 어머님께서 아이의 대학 진학을 원하시는 이유는 아마 좋은 직장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시기 때문일 것 같아요. 대부분의 부모님이 아이가 학자가 되기를 원해서 대학 진학을 바라시지는 않더라고요. 직업을 위한 경로로써 대학 진학을 생각할 때, 고등학교 내신의 1/3인 1학년 내신이 7~8등급 정도라면 2, 3학년에 내신을 올린다 해도 평균 4~6등급에 그칩니다. 이 등급대로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이 아이의 직업 선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어쩌면 아이는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나름의 진로 계획을 한 것이 아닐지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아이가 학습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고요. 학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고자 하는 직업도 있고 위탁교육이 있다는 것도 스스로 알아본 것으로 보여서 자기 주도성이 높은 학생으로 보입니다. 어디 가도 제 몫을 할 아이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머님 입장에서는 아직 해보지도 않고 단정 짓는 것 같아 아쉽고 화가 나시는 것 아닐까요?

현재 고2인, 제 아이의 친구도 연예계에 꿈을 두고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 있어요. 그 친구의 성적도 어머님의 자녀와 비슷하지 싶습니다. 2, 3등급 대의 아이들도 자신의 성적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하는데(본인이 원하는 대학과 현실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제 아들 친구는 자신의 꿈이 있고 그 꿈을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자신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 친구를 아는 주변의 어른들은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칭찬하지만 유일하게 그 친구의 엄마(저의 지인이기도 한)만 화를 내더라고요. '아무나 연예인이 되냐' '공부하기 싫으니 저러는 거다' '대학 가고 나서 하고 싶은 것 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하면서요. 요즘 아이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정보가 많아서 이전 세대보다 어른들의 말만 듣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길이 맞는지 빨리 파악해서 그 길로 가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지금 볼 수 없기 때문에 부모는 불안하고 안정적인 루트로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소위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쉽지 않은 요즘, 단순히 다수가 가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주변에서, 일찍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서 실행해 본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잘 꾸리고 있지만, 수동적으로 따라 살다가 어지간한 대학도 졸업했지만, 그 이후에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실패한 사례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적고, 자랑거리가 될 만한 엄친아 스토리만이 많이 회자하지요. 평범한 성공이 무색해지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많은 부모님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수년 전 분당 등대모임에서 열었던 미니등대 강의에 청년노동인권단체의 청년 대표를 강사로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질의 응답시간에 강사에게 쏟아진 질문들은 놀랍게도, 청년들의 노동인권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그 청년 대표가 대학을 입학했지만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질문들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대학 다니지 않은 걸 허락하셨느냐?' '정말 대학을 다니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 '왜 대학에 다니지 않았느냐?' 그 청년대표는 이미 책도 출간했고, 자신이 운영하는 단체로 사회적 기여도 하고 있고, 자신의 밥벌이도 하는 상태였음에도, 왜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지에 대한 엄청난 양의 질문들은 우리 기성세대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대학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조선미 교수님의 말씀을 빌려보자면, 자녀 양육의 목표는 독립이라고 합니다. 어머님의 따님도 고1에 이 정도로 야무진 모습을 보이니 독립을 못 할지 걱정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의 불안은 우리 자신 안에서 그 이유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내 삶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한 감정을 아이들에게 과하게 투사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험한 일을 겪을까 하는 염려는 당연하지요. 충분히 걱정되시고 속상하실 것 같아요. 어머님의 그런 감정을 아이에게는 어떻게 표현하셨나요?

󰡒엄마에게는 우리 딸의 안전이 너무 중요한데, 이러이러한 상황이 생겨서 네가 다칠지 너무 걱정돼.󰡓

라고 어머님의 진심과 사랑을 전하셨나요. 아니면 그 진심을 화와 소리 지름으로 표현하셨나요? 아이는 어머님의 진심을 알게 되었을까요? 아니면 어머니가 자신을 불신한다고 오해했을까요? 언젠가는 아이도 사회생활을 해야만 하는데, 부당하거나 불의한 일에 잘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르바이트 면접도 통과하고 혼자 보건증도 받으러 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아이입니다. 만만해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미성년자인 만큼,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부모님이나 사장님께 바로 도움을 구하라고 미리 대화를 나누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돈보다 아이의 인격이 소중함도 알려 주시고 부모가 아이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어머님의 걱정하는 마음을 알면 자신도 어떻게 행동해서 위험을 줄일지 미리 준비도 하고 얘기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님과 아이의 관계가 어떠한지, 아이가 정말 자신의 적성이 미용과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빨리 벗어나려는 마음인지 확인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정말 취업이 목표라면 함께 대화해서 적성에 맞는 직업고등학교로 편입이나 재입학을 알아볼 수도 있고, 현재 아이가 선택한 위탁교육에 대해서도 부모님께서 자세히 알아보시고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이의 학력인지 아이가 학습력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헤아려 보시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당장은 이게 내 자식 농사의 결과인가 속상하고 화가 나실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숨은 아이의 주도적 태도와 독립성은 어머님이 아이의 싹을 꺾지 않고 잘 키우신 자랑스러운 결실임을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상담넷 이용 만족도 조사

다시한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온라인 상담소를 이용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하지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나의 큰 우주를 만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함께 고민과 걱정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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